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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객 송창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평론&기사197

[영화기사] 송창식출연-마음은 푸른하늘 1973년 제작된 마음은 푸른하늘에서 영환역을 맡아 출연하였구요 주제곡을 작곡하였다는데 어떤 곡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관계된 기사 스크랩이 있어서 같이 올립니다 영화제목 마음은 푸른 하늘(1973) 감 독 : 박태원 배 우 : 남궁원 , 김상희 장 르 : 계몽 상영시간 : 97분 제 작 사 : 제작국가 : Korea, South 관람등급 : NRD 출시날짜 : 1973년 월 일 제작년도 1973 제작자 김진관 제작사 동아흥행 제작비용 배급사 심의일자 1973-11-13 심의번호 개봉일자 1973-11-30 관람인원 6,396명 관람기준 중학생 관람가 상영시간 97분 개봉극장 국제 각 본 이희우 감 독 박태원 조감독 천성육 기획자 박인재, 최현민 촬 영 유영길 촬영보 장선운 촬영장소 조 명 김.. 2008. 11. 8.
[기사] "난 50년째 수련중… 추억으로 먹고 살진 않겠다" "난 50년째 수련중… 추억으로 먹고 살진 않겠다" 지방돌며 콘서트 라이브 무대서는 가수 송창식 "음악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 우리나라엔 한 명도 없어" [조선일보] 한때 우리 젊음이 열광했던 송창식(宋昌植·58)은 추억의 인물로 되살아 오는 줄 알았는데, 그는 이를 경멸했다. “요즘 70·80년대 추억 바람이 부니, 윤형주가 다시 ‘트윈폴리오’를 하자고 해요. 그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만 충분해요. 하지만 음악이 인생이면 그럴 수가 없죠. 매일 수련해야죠. 나이만큼 발전한 노래를 불러야지 스무살 때 노래를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너는 전혀 발전 안 했기 때문에 듀엣을 할 수 없다’고 했죠. 윤형주는 수련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노래가 인생인 자와 아닌 자의 차이죠.” 그와 인터뷰하.. 2008. 11. 7.
[평론] 전북대 이종민 교수의 '나의 기타 이야기' 론 과거로의 아름다운 나들이--[나의 기타이야기] 송창식-나의기타이야기 버전1,2 오리지널곡 송창식['78 Song Chang Sick] B01 나의기타이야기와 1990년편곡 송창식['90 골든2집]05 나의 기타이야기 연속듣기 옛날 옛날 내가 살던 작은 동네엔 늘 푸른 동산이 하나 있었지 거기엔 오동나무 한 그루하고 같이 놀던 소녀 하나 있었지 넓다란 오동잎이 떨어지면 손바닥 재어보며 함께 웃다가 내 이름 그의 이름 서로서로 온통 나무에 이름 새겨 넣었지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나의 지난날의 사랑이야기 아름답고 철모르던 지난날의 슬픈 이야기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하늘이 유난히도 맑던 어느 날 늘처럼 그녀의 얼굴 바라보다가 그녀 이름 새겨 넣은 오동나무에 그녀 모습 담아보고 싶어졌지 말할 때는 동그란 그.. 2008. 11. 7.
[인터넷펀글] '하얀손수건' 1절을 2번 부른이유 [주]윈드버드에서 펀글입니다 '''하얀손수건'의 1절을 2번 부를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 심각한 이유가 있을 줄 알고 귀 기울여보니 바로 윤형주의 불성실함(?)때문이었다니... 송창식이 일러준대요. " "윤형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작사를 할 수 있었다. 외국곡을 가지고 오면 번안을 했다. 사실 그전에는 영어로만 불렀다. 그래서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하나 꽤 노력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 공공장소에 가서 노래할 때는 우리말로 노래를 번안해서 불러야 한다는 일종의 약속법이 있어서 그렇지 않으면 출연을 못했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번안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웨딩케익을 번안할 때 윤형주와 같이 번안을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윤형주는 의대에 다녀서 공부를 해야 하므로 바쁜지 해 오지 않아 내가 번안.. 2008. 11. 7.
[포스터] 1974년송창식리사이틀 1974년 9월28일-30일까지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있었던 송창식 리사이틀(딩동댕지난여름) 포스터입니다 2008. 11. 7.
[기사1987] 삶의 의미담은 「메시지송」인기 1987년 10월 3일 조간 12면 신형원 「개똥벌레」-송창식 「참새의 하루」등, 삶의 의미담은 「메시지송」인기 2008. 11. 7.
[기사1986] 김정호유족돕기 송창식등16명취입 1986.11.01 조간 12면 김정호 유족돕기 이색 새 앨범. 송창식등 16명 고인히트곡 새로 취입.. 사랑의 앨범 잊으리라(1986.11.26) 2008. 11. 7.
[기사1985] 카톨릭 가요상 송창식 대상차지 1985.02.15 조간 12면 올해 카톨릭 가요상. 송창식 대상차지 양희은은 공로상기사입니다.. 1986년 8월 18일 송창식-우리는 2008. 11. 7.
[기사1982] 가톨릭 가요대상 1982.02.16 조간 12 작사=송창식-작곡-이현섭씨 가톨릭 가요대상 결정기사입니다.. 송창식-가나다라 2008. 11. 7.
[기사1979] 宋昌植 - 金泰坤 일본 콘서트 1979.11.25 조간 5면 宋昌植 - 金泰坤 일본 콘서트 한국 로크의 상륙 조용한 바람기사입니다.. 2008. 11. 7.
[기사1977] 가수 宋昌植 구속 1977.03.24 조간 7면 가수 宋昌植 구속 예비군 훈련 다섯번 기피기사입니다.. 2008. 11. 7.
[기사1976] 예비군훈련기피 가수 宋昌植씨 입건 1976.10.14 조간 7면 예비군훈련기피 가수 宋昌植씨 입건기사입니다.. 2008. 11. 7.
[기사1973] 가수 宋昌植 입대 1973.10.10 조간 5면 가수 宋昌植 입대기사입니다.. 2008. 11. 7.
[기사1973] 포크 싱거 宋昌植 뮤지컬 영화 출연 1973.09.05 조간 8면 포크 싱거 宋昌植 뮤지컬 영화 출연기사입니다.. 2008. 11. 7.
[평론] 송창식의 말은 한편의 ‘강의’였다 스타들이 남긴 말… 말… 말… [주간조선 2004-03-10 18:31] “뛰어난 가수들, 알고보니 철학자였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오랫동안 한 부문에서 활동해 금자탑을 세운 거장들을 만나면 자신만의 견고한 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70년 역사의 대중가요계를 수놓은 스물여섯 명의 거물과 만나 인터뷰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단지 노래하는 가수나 연주자가 아니라 ‘예술철학가’라는 사실이었다. 맹세컨대 가수들의 답변이나 발언 가운데 수정하거나 윤색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들이 한 말을 그대로 적어 내려갔을 뿐이다. 하기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필자도 놀랄 만큼 그들의 논리는 정연했고 언어구사도 빼어났다. 먼저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여가수는 여자로서 아름다움을 잃으면 안 된.. 2008. 11. 7.
[기사] 윤연선-송창식등 데뷔앨범으로 실내장식 포크가수 윤연선,사업가 변신 [스포츠투데이 2004-03-30 00:57] ‘얼굴’의 포크가수 윤연선이 사업가로 변신했다. 윤연선은 최근 서울 서교동에 자신의 대표곡 이름을 딴 포크음악 전문카페 ‘얼굴’을 오픈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동교동에서 운영하던 카페 ‘얼굴’을 서교동으로 옮겨 포크음악전문카페로 재탄생시켰다. 윤연선은 카페 내부를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등 70년대 대표 포크가수들의 데뷔앨범 재킷으로 장식했다. 윤연선은 포크음악전문카페의 개장기념으로 29일부터 열흘간 김도향 장은아 사월과오월 김승덕 등 왕년의 포크가수들을 매일 1팀(명)씩 초청해 라이브공연을 갖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3월 무려 27년간 헤어져 있던 첫사랑과 만나 결혼에 골인,큰 화제를 모았다.(02-334-5044) /허민녕 t.. 2008. 11. 7.
[기사] 東海의 고래 [만물상] 東海의 고래 [조선일보 2004-04-09 18:07] 지금의 40대들이 스무 살 무렵 막걸리나 소주 한잔 하면 즐겨 부르던 노래로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로 시작해서,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하며 하늘이 떠나갈 듯 목청을 높이면 신기하게도 가슴에 응어리졌던 까닭 모를 슬픔과 우울과 분노가 일순 사라지곤 했다. 가사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했지만 그중에서도 부를 때마다 묘한 설렘을 안겨주었던 구절이‘신화처럼 숨쉬는 고래 한 마리’라는 부분이었다. 절벽과 같은 현실에 절망하며 탈출을 꿈꾸는 숱한 젊음들에게 동해바다의 고래는 원시의 생명력이요, 해방 그 자체였다. 동해의 고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반구대의 수천 년 전 신석.. 2008. 11. 7.
[기사] 02년신동아-밤창식, 별창식, 왜창식 [한국 대중음악 스타 열전] “나는 내 음악 했을 뿐…저항가요라 평하지 말라” 한국 포크의 선구자 송창식 임진모·대중음악 평론가 www.izm.co.kr 발행일: 2002 년 10 월 01 일 (통권 517 호) 쪽수: 592 ~ 603 쪽 송창식 골든 제3집 전곡서울음반 1988.10.3. 대중음악사는 1969년 발매된 트윈폴리오의 데뷔작을 한국 최초의 포크앨범으로 기록하고 있다. 1970~8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포크음악의 서장을 열어제친 트윈폴리오는 아쉽게도 이듬해 해산했으나 그후 30여 년 동안 송창식은 전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음악적 실험을 거듭해왔다. '늦여름 깊은 밤, 미사리의 한 카페에서 못다 부른 노래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 송창식을 만나 시대와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08. 11. 7.
[기사] 임진모 가요계 큰별과의 인터뷰 모음집 발간 임진모 가요계 큰별과의 인터뷰 모음집 발간 [속보, 연예] 2004년 03월 29일 (월) 15:09 [스포츠서울] “대가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45)가 최근 발간한 인터뷰 모음집 ‘우리 대중음악의 큰별들’(민미디어 출간)을 집필하기 위해 가요계의 톱스타들을 모두 만나본 뒤 느낀 소감이다. ‘우리 대중음악의 큰별들’은 지난 2002년 7월부터 1년5개월 동안 시사 월간지 신동아와 음악전문지 오이뮤직에 게재됐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신중현 패티김 한대수 양희은 등 한국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음악인들 26명의 인터뷰가 수록됐다. 임씨의 뇌리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가왕(歌王)’ 조용필. 지난해 8월 데뷔 35주년 공연을 앞두고 서울 강남의 작업실에서 만.. 2008. 11. 7.
[신문] 1991년 한국일보 문화인/예술인 한국일보 1991년 5월 11일 문화인 / 예술인 - 가수 송 창 식 한국전쟁 직전, 어린 송창식이 없어지면 어머니는 늘 라디오소리 나는 곳에서 그를 찾곤했다. 결국 송창식(44)은 라디오뿐 아니라 TV, 대학캠퍼스, 술집 어디에서건 자신의 소리를 울려내는 남달리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부침이 심하고 명이 짧은 대중가수들의 세계에서 그는 20여년을 꿋꿋이 버텨왔으며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송창식이란 이름석자를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떠올릴수 있게 되었다. 독특하게 구축된 그의 음악세계는 특정계층의 감정 촉발을 강요하지않는 포괄적 성향을 보였고 대중가요들이 심심찮게 휘말려 들어갔던 저급, 퇴폐, 매판성 시비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었다. 75년 순전히 [러브송]으로 작사작곡,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했.. 2008. 11. 7.
[신문] 형이 날 노래의 길로 이끌었죠 >문화 > 한국일보 2003년 9월7일 형이 날 노래의 길로 이끌었죠 양희은(51)은 송창식(57)을 아직도 창식이 형이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그냥 형이라고 불렀어요. 그 때는 그랬죠. 피붙이도 아닌데,오빠는 무슨 오빠”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에게 송창식은 오빠 이상이다. “내가 노래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니까요.” 유난히 남자 선배가 많은그가 송창식을 첫번째 인연으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1971년 초, 재수 끝에 서강대에 입학한 양희은은 절박했다. 어머니의 빚보증 때문에 하루 아침에 가세가 기울었다. 버스비조차 없어 걸어 다녀야할 판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무작정 통기타를 들고 명동의 ‘금수강산’에서 노래하던 송창식을 찾아갔다. “형, 나 노래 좀 하고 싶은데요.” “왜?” “돈이 필요해요.”.. 2008. 11. 7.
[클리프팬페이지에서펀글] 클리프와 만난 송창식 1969년 10월 15일(수) 예정시각 11시45분 보다 30분 늦은 12시15분 김포공항 하늘에 JAL기는 서서히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드디어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던 팬들은 탑승객 거의 마지막으로 트랩을 내리는 클리프를 보았다. 짙은 북청색 상의와 엷은 회색바탕에 짙은 회색 줄이 그어진 바지차림의 산뜻한 복장을 하고 미소를 띈 클리프 첫인상은 그 동안 영화와 사진을 통해서 보았을 때 느껴진 왠지 동양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아! 서양 사람이구나!였다. 실제 그의 모습은 눈이 훨씬 더 컸고 코도 사진보다 훨씬 더 오똑했다. 국빈 예우로 맞아준 한국일보와 팬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하며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 방문 때 들었다고 살며시 귀뜸해 주었다. 매니저 데이빗 브라이스는 한국이 매우 작은 줄 .. 2008. 11. 7.
[칼럼:이해성] 하나의 결이 되어 하나의 결이 되어 -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2002-07-26 10:32:00 AM 70년대의 젊음과 80년대의 원숙 84.1 팝 칼럼리스트/이해성 송창식,윤형주, ['90 하나의결CD1] 09 Try To Remember 60년을 헤아리는 한국 가요사상 가장 건강한 음악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70년대 이른바 청년문화를 표방했던 포그 뮤직 지향의 젊은 자작곡 세대의 등장이었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었던 포크 뮤직은 단일한 한 장르의음악처럼 단순화되어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서로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 아티스트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통 기타) 반주로 옛 민요 멜로디에 새로운가사를 붙이거나 새로 작곡한 민요적 멜로디에 기존 사회의 병리현상을 풍자하는 가사를 붙여 노래했던 이른바.. 2008. 11. 7.
[인터뷰] 김지하-상생(相生)의 화두를 찾아서중.. 요기싸르의 시인 김지하 상생(相生)의 화두를 찾아서 15호. 2003. 여름 추억의 치열함 조성택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소에 선생님을 사진에서만 뵈어 왔습니다만, 제가 오랜 기간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가끔씩 한국의 토종 얼굴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송창식 씨, 차범근 씨,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죠. “아, 이 세 얼굴들이야말로 한국의 토종 얼굴이다!” 생각했던 것인데, 오늘 선생님을 뵙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김지하 허허,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송창식 씨는 우리 장모님(소설가 박경리)이 무척 좋아하세요. 조성택 이제 일산에 오신 지도 제법 되시지 않았습니까? 김지하 벌써 한 9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원주를 떠난 것은 제법 오래 됐지요. 해남을 간 것이 언제였.. 2008. 11. 7.
[잡지기사] 굿피플-입양아 키우는'사랑의 가객'송창식 [굿피플] 입양아 키우는 '사랑의 가객' 송창식 2/15/2004 70~80년대, 지금의 40~50대가 젊은 시절 가장 열광하던 가수가 송창식이었다. 그는 그냥 대중가수가 아니라 노래하는 시인이었으며, 그 시절 대변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그때 함께 고래잡으로 떠나던 우리의 우상, 영원한 통기타맨 송창식(57)이 두명의 입양아를 키우며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 과거 청바지에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송창식이 언제부턴가 개량한복 차림에 경기도 퇴촌 한마을에서 도인(道人)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가요계에 꽤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친자식까지 있는 사람이 두 아이를 입양한 사연은 무엇일까. 송창식에게는 지난 77년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올해 27세의 아들 결군이 있다.그리고 23세 된 딸.. 2008. 11. 7.
[잡지기사] 조영남의 '진짜 가수론' GQ KOREA 2003년 5월 조영남의 "진짜" 가수론 우리가 이 태생적인 리버럴리스트를 만난 것은, 미국 동서부를 잇는 순회공연을 막 끝내고 돌아온 그가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도 못한 어느날 오후였다. 뉴욕, 워싱턴, 라이베이거스, 보스턴 등에서 각각 러닝타임 3시간의 공연을 흡족하게 치른 그는, 이번 공연이 자신의 생애에 기록될 '베스트' 공연들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는 "가수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환영해준 탓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떻게 3시간의 솔로 공연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스타일로 노래하면 안 된다. 그것은 내가 일찌감치 70년대부터 익혀둔 노래에 대한 노하우가 발휘된 거라고 생각한.. 2008. 11. 7.
[잡지기사] 자선모금행사에서 무료 열창 제목 : 국내외 나환우들을 돕기 위한 제21회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 일정 : 2003년 5월 16일(금) 19시30분 장소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가격 : R석 70,000원 / S석 30,000원 / A석 20,000원 / B석 10,000원 예매처 : 티켓링크 1588-7890 07-송창식 골든1 04.그대있음에 국내외 나환우들을 돕기 위한 제21회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 The Charity Concert for the Hansen's Disease Patients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나환우들을 돕고자 라자로 돕기회에서 시작한 자선 음악회 “그대 있음에”가 올해로 21회를 맞이하여 오는 5월 16일 오후 7: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무대를 마련한다.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는 나.. 2008. 11. 7.
[평론:강 헌] 불우했던 '70 청년문화 '불쏘시개' 불우했던 70년대 청년문화의 '불쏘시개'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를 이루어 서울 명동의 쉘부르에서 노래할 때만 해도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1969년 미국에서 한대수가 귀국하면서 모든 것은 바뀌었다. 가수가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야 되는 시대가 불쑥 시작된 것이다. 나는 서울예고에서 음악을 전공했지만 작품을 써 본 적은 없었다. 처절한 습작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70년 솔로 1집에 담겨있는 단 하나의 자작곡 '창밖에는 비오고요'가 나의 첫 작품이다.' 조용필과 견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객 송창식. 그가 운명적으로 싱어송라이트가 된 사연은 이랬다. 하지만 산맥과 같은 무게를 지닌 이 도도한 거장의 첫 걸음은 차라리 순박한 것에 가까웠다. 68년 번안곡 꾸러미를 안고 트윈폴리오라는 듀엣.. 2008. 11. 7.
[평론:강 헌] 통키타 음악, 봄과 함께 부활한다. [통기타 음악, 봄과 함께 부활한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앰프를 통한 전기적인 증폭 음향이 세기말의 음 악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통기타와 하모니카 같은 간단한 자연음으로 진솔하게 인간과 세계에 대해 노래하는 모던포크음악은 완연히 비주 류의 변방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은 발라드와 댄스뮤직이라는 양대 문 법의 일방적인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서 음악산업은 십대 취향의 음 악으로 이동했고, 70․80년대의 청년문화와 대항문화의 주축이자 상업 적인 영역에서도 주류를 장악했던 한국 모던 포크는 90년대 통기타 음악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김광석의 사후 급격한 퇴조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장의 가시적 외양이 한국 포크음악의 사멸을 이 야기하는 것은 .. 2008. 11. 7.
[잡지기사] 학창시절 - '자존심은 상할 수 없다' [내 인생을 바꿔준 사람 - 자존심은 상할 수 없다] (송창식) 송창식-케사라 송창식 군의 유급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니 학교에 나오기 바랍니다. 예고 3학년을 맞이하려던 봄방학 때, 인천 할아버지 댁에 있던 내가 받은 편지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그럼에도 1년만 더 버티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텐데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밀려왔다. 1964년 인천에서 중학교를 마친 나는 서울예고를 지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나는 음악을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예고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당시 내가 세상 물정을 얼마나 몰랐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준 선택이었다. 예비 소집일에 처음 학교에 가보았다. 그때 학교가 이화여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회도 이화여고와 함께했.. 2008.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