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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칼럼:이해성] 하나의 결이 되어

by 팬더54 2008. 11. 7.


하나의 결이 되어 -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2002-07-26 10:32:00 AM

70년대의 젊음과 80년대의 원숙



84.1 팝 칼럼리스트/이해성






 

송창식,윤형주, ['90 하나의결CD1] 09 Try To Remember
 

 

60년을 헤아리는 한국 가요사상 가장 건강한 음악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70년대 이른바 청년문화를 표방했던 포그 뮤직 지향의 젊은 자작곡 세대의 등장이었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었던 포크 뮤직은 단일한 한 장르의음악처럼 단순화되어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서로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 아티스트들이 뒤엉켜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통 기타) 반주로 옛 민요 멜로디에 새로운가사를 붙이거나 새로 작곡한 민요적 멜로디에 기존 사회의 병리현상을 풍자하는 가사를 붙여 노래했던 이른바 모던 포크를 표방했던 그룹과 어쿠스틱 기타를 반주로 사용한다는 외형적스타일은 같았으나 음악적으로는 한국 가요에 팝이나 록, 그 밖에 컨트리 뮤직적 분위기를 다양하게 시도했던 그룹이있었다.


이들 후자의 리더가 바로 윤형주,송창식,김세환으로 대변되었고 이들의 음악적 움직임은 상업적인 음악에 식상해있던 당시 진취적인 도시 젊은층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60년 가요사상 자작곡 세대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미루어 당연히 한국의 대중가요에도 팝스타일이 들어오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상창을 인정한다 해도 만일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세 사람의 음악적 움직임이 없었다면 팝 스타일의 가요는 지금과 많이 달라 있을런지 모른다. 이만큼 이 세사람의 음악적 영향력은 70년대 한국 젊은 가요에 있어 절대적이었다. 단순한가요의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70년대 한국의 문화 현상을 이야기할 때 이들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이만큼 이들의 음악은 70년대를 장식했던 한국의 중요한 문화 현상의 하나였다.
그러나 75년 대마초 사건이란 불행한 일로 이들의 활동이 잠시중단되기도 했밌다. 하지만 이런 시련은 음악적 성숙을 가져오기도 했다.

 

80년대 접어들면서 이들 세 사람은 각자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형성, 개성있는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자신 이미 기성세대로 접어 들었다. 각자 독자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70년대에 보여 주었던 젊은 감각과 80년대의 원숙함이 한데 어울려 이 앨범 제작에 착수한 것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레퍼토리를 들으면 70년대의 향수와 함께 원숙기에 접어든 세 사람의 음악성과 또 음악을 떠난 세 사람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가 있다. 이상하게도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배타적이어서 좀처럼 아티스트들이 어울려 작업틀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세사람이 함께 모여 레코딩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들은 음악이라는 하나의 문을 통해 만났고 모였고 또 마음을 열어 그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닫혀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이 전하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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