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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클리프팬페이지에서펀글] 클리프와 만난 송창식

by 팬더54 2008. 11. 7.

 


1969년 10월 15일(수) 예정시각 11시45분 보다 30분 늦은 12시15분 김포공항 하늘에 JAL기는 서서히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드디어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던 팬들은 탑승객 거의 마지막으로 트랩을 내리는 클리프를 보았다. 짙은 북청색 상의와 엷은 회색바탕에 짙은 회색 줄이 그어진 바지차림의 산뜻한 복장을 하고 미소를 띈 클리프 첫인상은 그 동안 영화와 사진을 통해서 보았을 때 느껴진 왠지 동양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아! 서양 사람이구나!였다.


실제 그의 모습은 눈이 훨씬 더 컸고 코도 사진보다 훨씬 더 오똑했다. 국빈 예우로 맞아준 한국일보와 팬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하며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 방문 때 들었다고 살며시 귀뜸해 주었다. 매니저 데이빗 브라이스는 한국이 매우 작은 줄 알았는데 와서보니 인구가 많은 것 같고 상당히 크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클리프는 숙소인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 자리) 735호실에 여장을 푼 뒤 2시간 후에는 한국일보 12층에 있는 대강당에서 쉐도우즈, 그리고 MBC 관현악단과 MBC 합창단에서 선출된 3명의 여성 백코러스들과 함께 3시간동안 리허설을 하였다.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였는지 공연 때보다도 리 허설 할 때의 클리프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고 멋있었다.


클리프를 만나면 할 말들을 몇 달 전부터 준비해 놓았건만 바로 앞에 나타나자 단 한마디도 하지를 못했고 리허설장에 들어온 20여명의 한국일보 직원들과 공연담당 스탭들이 싸인을 받느라고 무대 쪽으로 달려들 갔었지만 정작 팬들인 우리 일행 3명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를 못하고 객석 5번째 줄에 있는 의자에 부동의 자세로 앉아만 있었다. 정말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리허설이 끝난 후 아! 이젠 숙소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클리프가 우리들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웃으면서 아까 손님들은 나한테 와서 싸인을 받았고, 내 팬들에게는 내가 와서 싸인을 해주어야지? 하면서 장난을 하였다.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아마 자신의 팬들에 대한 클리프의 자상한 마음은 어느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한 순간이었다.


도착 날 저녁에는 영국대사관저에서 영국대사 부부가 베푸는 환영파티가 있었다. 주로 주한외교 인사들과 매스컴 관계자들 그리고 한국가수 6명(김상희, 박형준, 조영남, 최영희, 윤형주, 송창식)이 초청되었었다.


이튿날 저녁식사는 클리프가 한정식으로 먹고 싶다고 하여 워커힐호텔 한정식 명월관에서 불고기와 로스구이를 많이 먹었다.
클리프 일행 거의 모두가 대식가들이었으며 술을 못하는 클리프였지만 정종을 두어 잔 마셨었다. 명월관에서 룸서비스를 담당했었던 여직원은 클리프 일행을 못 알아보고 있다가 그들이 차를 타고 떠나려는 순간에야 알고 맨발로 뛰어 나오는 헤프닝도 있었다. 이날의 식사는 공연 주최측인 한국일보에서 마련한 만찬이었었지만 식대 지불은 클리프가 하였다. 클리프는 당신들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지만 난 공연으로 많은 돈을 버니까 이건 내가 사겠다. 회사에서 나온 돈은 공연이 끝난 후 뒤에서 수고한 분들과 회식을 하도록 하라고 하면서.....
(클리프가 떠난 후 한국일보 사업부 분들이 우리들에게 갈비를 푸짐히 사 주셨었다).


한국방문 3일째 되는 날에는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다면서 도시보다는 시골을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피곤함을 감안하여 가까운 비원을 둘러보았는데 무척 아름답고 자신의 집 정원과 비슷한 곳도 있어서 인상적이라고 했다. 방문 4일이 되는 날 오후 3시에는 CFC 회원들과 함께 하는 클리프의 29회생일 축하를 겸한 리셉션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일보 설립자이신 장기영 회장님께서 도대체 클리프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좀 봐야겠다고 하시면서 참석하셨었다. CFC(Cliff Fan Club)에서는 클리프에게 한복과 색동으로 만들어진 안경집, 그리고 금으로 만든 클럽 뱃지를 선물로 주었다. 한국일보 소강당에서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했었던 리셉션에 대해서는 떠나는 날도 그 이야기를 했고 팬들의 정성스런 선물은 매우 고마웠다고 했다.


매니저 데이빗은 너무도 철두철미하게 클리프를 관리 보호하는 것 같았다. 팬들이 몰려들려고 하면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클리프 앞을 가로막곤 했다. 그 사이로 만면에 미소를 띄고 클리프는 팬들에게 장난을 하곤 했다.


한가지 너무 아쉬웠던 점은 이날의 하이라이트로 기획했었던 프로그램 중 여고 재학 중이면서 그 당시 무용계의 주목을 받고있던 한국무용을 하는 회원 5명이 부채춤과 장구춤을 보여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멋지게 완벽한 분장을 하고 나타난 시간에 리셉션이 끝나게 된 것이었다. 늦은 원인은 이 당시 서울에 있는 많은 여자고등학교에서는 클리프가 한국 도착하는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중간고사를 보게 하였다.


이유는 클리프 내한으로 각 학교마다 비상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고 몇 학교는 학생지도부 선생님을 공항에 파견하기도 했었다. 특히 전교생이 거의 클리프 팬이다시피 한 정신여고에서는 학교측이 교내 비상사태로까지 선포하면서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을 교문밖에도 못나가게 하였었다.


무용을 맡았던 그들이 바로 정신여고생이었던 까닭에 선생님에게 붙들려 있다가 리셉션 시간이 임박해 오자 그냥 무조건 탈출해 나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영광의 탈출을 감행한 보람도 없이 멋진 무대를 펼쳐 보지도 못한 채 다음날 학교에서 호된 불호령만 받은 것이다.


클리프는 한국에 머무는 기간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뒤에 있는 구세군을 방문하여 기금을 내고 쇼핑은 주로 반도아케이드에서 했다.


마지막으로 팬클럽 C.F.C를 통해서 팬들에게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는 자신의 레코드 시장이 없는 줄 안다. 그러나 팬들이 있다는 것은 즐겁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팬들의 호응을 바란다고 전했다.


클리프는 팬들을 무척 아끼며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적인 피곤을 느끼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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