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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잡지기사] 조영남의 '진짜 가수론'

by 팬더54 2008. 11. 7.

GQ KOREA 2003년 5월

조영남의 "진짜" 가수론


 우리가 이 태생적인 리버럴리스트를 만난 것은, 미국 동서부를 잇는 순회공연을 막 끝내고 돌아온 그가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도 못한 어느날 오후였다. 뉴욕, 워싱턴, 라이베이거스, 보스턴 등에서 각각 러닝타임 3시간의 공연을 흡족하게 치른 그는, 이번 공연이 자신의 생애에 기록될 '베스트' 공연들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는 "가수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환영해준 탓에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떻게 3시간의 솔로 공연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스타일로 노래하면 안 된다. 그것은 내가 일찌감치 70년대부터 익혀둔 노래에 대한 노하우가 발휘된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60~70년대 배워둔 노래들은 진정한 노래였다.  

 
그러니까 청중들에게 먹힌 거다. 그것만이 지금 승산의 요인이다. 김건모나 조성모 같은 친구들이 가면 두세 시간을 무슨 방법으로 하겠나. 물론 그들이 가면 전혀 다른 관객들이 오긴 하겠지만. 난 나대로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본다"고 답했다.


GQ 거기서부터 질문을 시작하겠다. 당신이 진정한 노래를 익혔다는 1970년대는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로 불린다. 그리고 당시 당신과 한 무리를 이뤘던 일군의 가수들은 대중음악사에 각각의 개성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니까 다음의 질문들은 한 번도 현장을 벗어난 일이 없는 당신이, 70년대의 가수들과 그 이후의 가수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조영남 내 생각에 가수는 노래만 해서는 안 된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봐라. 그들은 시인이자 철학자들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철학자였다. 철학이 아니면 마약이나 퇴폐로 빠지는 거다. 지미 핸드릭스 같은 경우는 퇴폐로 영혼을 특이하게 만든 거다. 아티스트는 남과 다른 존재다. 남과 같은 존재가 아티스트인가? 다 같은 존재라면 뭘 볼 게 있나. 달라야 된다. 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좋은 쪽으로 내달렸다. 미술, 신학 등의 방향으로. 그래서 이렇게 된 거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치열하게 데카당스 쪽으로 영혼을 연마하는 식을 택하느냐, 그래서 그것으로 아티스트가 될 거냐, 아니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냐, 이런 문제로 잔머리를 많이 굴렸다.


GQ 요즘 가수들을 바라보는 조영남의 직접적인 코멘트부터 듣고 싶다.
 

조영남 요즘 가수들은 모두 안절부절, 불안해한다. 얼굴 편한 경우 봤나? 방송 나와서는 웃겠지만, 그 내면으로 들어가봐라. 기초가 없는 데다, 앨범이 안 팔리면 일거에 깨진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그건 김건모, 조성모 같은 톱도 마찬가지다. 부풀려 놓은 몇 억짜리 리치를 못하면 한 순간에 잊혀진다는 생각 때문에 엄청나게 불안해한다.


GQ 당신이 대중음악에 입문하고 활약했던 70년대는 안 그랬다는 얘긴가? 

 조영남 우린 안 그랬다. 송창식, 조동진, 이장희, 윤형주, 김도향, 양희은, 김민기, 김정호, 김현식 등등. 그때는 인기가 우릴 띄우고 인기가 우릴 떨어뜨린다는 사고가 없었다. 맨날 붙어다니고, 이장희네 칙칙한 아파트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냥 눌러 살고. 그러니 내가 보기에 요즘 가수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 같다.


GQ 흔히 말하는 라이벌 의식도 없었나? 만약 없다면 혹시 당신만의 기질이 발동한, 너그러운 판단은 아닌가? 

 조영남 진짜, 진짜, 진짜, 없었다. 그게 있다면 뭉치고 다녔겠나. 그 시절의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사진가 김중만이 증인 서 줄 거다. 우리에겐 서로 라이벌이라는 것을 느낄 구조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윤형주가 송창식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겠나? 개성이나 창법에서 둘이 워낙 다른데. 그런 걸 떠올리면 우린 참 젠틀했던 것 같다. 요즘 친구들은 돈 버는 걸 삶의 기준으로 여기고, 앨범 몇 장 파는 것에 목을 매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경우는 판을 몇 장 찍는 줄도 모르고, 파는 줄도 몰랐다. 그만큼 음악경제에 관심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도 지금 성공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라이벌 의식도 굉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앞서 말했지만 요즘은 극히 커머셜화됐다. 요즘 벌어지는 좋지 않은 상황, 앨범이 팔리는 게 가수들 인격의 기준이 되는 것들, 그것은 가수들의 잘못이 아니다. 예전에는 앨범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기준이었다면 조영남은 가수도 아니었다. 이 시대에는 'GOD 몇 장 팔았다' 그게 기준이다. 컴퓨터의 등장 이후에는 인간 자체가 컴퓨터화, 기계화, 커머셜화된 거다. 우리 시대에는 교통, 통신이 없었다. 가야 만나고 얼굴 봐야 얘기하고. 그런데 지금은 핸드폰 가지고 모든 걸 다 한다. 그리고 그만큼 선택권이 많고 다양한 시대가 도래했다. 그만큼 인간관계의 내용이 달라졌다. 다시 말해 시대가 바뀐 거다.


GQ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당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이름을 남겼다. 가수들 이외에도 최인호 같은 작가, 문호근 같은 음악가들, 지금은 뮤지컬 연출가로 이름이 높은 김민기, 명 MC로 불리는 이상벽, 음악평론가 이백천 등이 함께 거론되면서 그 연대를 증명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조영남 난 어느 때는 두렵고 공포스럽다. 나하고 눈을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으니까. 재미있는 존재들이어서 만났던 김홍신, 김한길이 정치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샌님같았던 작가 최인호가 이름 높은 소설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이장희, 윤형주는 음치였다. "어차피 너희는 가수 안돼"라고 수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전설적인 가수가 되지 않았나.


GQ 70년대 이후를 풍미한 '그때 그 사람'들,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김세환, 조동진 등에 대한 짧은 품평을 곁들여달라. 

 조영남 윤형주는 조금 과장해 말하면 귀공자다. 집안도 아주 좋았고, 목소리나 모든 것이 귀공자였다. 그런가 하면 송창식은 천민이다. 고향이 어딘지, 나이가 몇 살인지, 뭘 하던 놈인지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야말로 정체불명. 송창식은 각설이 수준에서 머물렀어야 하는데, 가수가 됐다. 이장희는 혁명가다. 시 쓰는 혁명가. 체 게바라 같은 놈이다. 노래하는 재능은 제일 떨어졌다. 대한민국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조동진? 그냥 낚시로도 평생 살 수 있는 조태공이다. 아주 바위 같은 존재다. 노래도 그렇지 않나. 조동진의 노래는 강이고 바다고 바위다. 김세환은 평민이다. 아무 문제도, 아무 특징 없이 잘 자란 인간. 정상적인 것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수 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 하는 것을 다 보여준 존재들이다. 나? 나는 윤형주와 송창식의 중간이다.



GQ 당신이 보고 듣기에 7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통틀어 절창으로 부를 만한 진짜 가수가 있다면 누구인가? 

 조영남 송창식, 배호, 정훈희, 유재하, 김광석, 김정호, 김현식. 내가 참 신기한 게, 유재하, 김정호, 김현식 같은 죽은 친구들과는 관계가 없었다. 미국 있던 시절이니까. 김광석은 직접 봤었다. 요즘 가수는 윤미래, 그런데 요즘은 조금 시원치 않다. 그렇게 좋았는데….


GQ 윤미래 이외에 요즘 가수들 중에 노래 잘한다는 가수는 없나? 앞서 언급한 대로 가수가 노래만 잘해선 되는 시절이 아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당신 나이가 됐을 때도 여전히 이름을 걸고 활동할 만한 가수, 혹은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는 가수는 누구인가?

 조영남 전혀 없다. (GQ 그건 요즘 풍토 때문인가?) 풍토 때문은 아니다. 난 왜 보아가 그렇게 인기있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 하겠다.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아니다. 당신이 질문하기 때문에 내 생각을 말하는 거다. 보아 노래를 몇 번을 들었는데, 난 왜 저게 잘하는 건지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겠다. 보아보다 노래 잘하는 친구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GQ 앞서 답변에서 유추한다면, 현재의 톱 가수를 포함해서 40대까지라도 활동할 거라고 생각되는 가수가 전혀 없다는 말인가? 

 조영남 지금 보기엔 없다. 외국에는 많다. 우리의 경우에는, 에바 캐시디나 이번에 그래미상을 석권한 노라 존스 같은 형태의 가수가 없다. 제니퍼 로페즈, 셀린 디온 같은 가수가 한 명도 없다.


GQ 에바 캐시디, 노라 존스 같은 형태의 가수가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조영남 그런 가수들이 진짜로 노래 잘하는 가수다. 스탠더드한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 에바 캐시디는 'Over the Rainbow'를 불러서 유명해졌다. 예를 들자면 그런 노래를 잘 불러야 된다. 즉, 나를 감동시켜야 된다는 거다. 에미넴 같은 경우 정말 날 감동시킨다. (GQ 에미넴은 전혀 다른 랩 장르 아닌가? 그래도?) 물론이다. 장르가 달라도 가슴이 뭉클한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에미넴의 노래에 대한 의지, 분노는 철학적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날 감동시키는 가수가 없다. 보아? 뭘 노래하는지를 모르겠다. 도대체 한 마디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동안 윤미래가 참 잘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요즘은 스피릿이 짧게 느껴진다
.

GQ 톱 가수들 중 김건모 같은 가수들은 노래 잘한다는 소릴 듣지 않나?
 

조영남 잘한다. 하지만 날 감동시키진 못한다. 그냥 재미있게 노래한다는 생각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가수들에게서 송창식이 '우리는' 부를 때, 이장희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부를 때 같은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보첼리가 노래부를 때 봐라. 셀린 디온은 소름끼치게 잘한다. 그런 경우가 우리 가수들 중에는 많지 않다.


GQ 어쩌면 그런 관점, 즉 스탠더드한노래를 잘 불러야 노래를 잘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은 당신이 속한 세대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조영남 천만에! 앞서 말했지만 에바 캐시디가 내 연배와 관계있는 선택인가? 그래미를 석권한 노라 존스는? 그게 연배와 관련된 관점이라면 어떻게 그들이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겠나.


GQ 다른 나라 역시 비슷한 상황일 텐데, 미국 가수들의 경우 스탠더드를 잘 소화하는 반면, 우리 가수들이 그렇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조영남 우리의 경우는 무식해서 그런 거다. (GQ 한국의 가수들이?) 아니다. 교육이 그렇다는 거다. 우리나라에는 전인교육이라는 게 없었다. 음악이 뭔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음악이 삶, 윤리, 도덕, 물리, 수학과 함께 뭉뚱그려진 것 중의 하나가 아니라, 별개의 플레이, 게임처럼 되어버렸다. 심히 우려된다.


GQ 그것을 교육계 풍토라고 한다면,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계 풍토는 그런 가수들만 양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조영남 장사가 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GQ 70년대 당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시점을 잠시 언급하고 싶다. 당시 '대중음악 르네상스의 근거지'로 불리던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는 '성점감상실(星占鑑賞室)'이라는 독특한 품평 시스템이 있었다. 작곡가, 가수, 노래 제목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노래를 들려준 다음 솔직한 코멘트와 함께 별점을 매기는 방식이 그것이다. 당시 회고를 보면 별 10개 만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고도 하고, 그 결과가 주간신문에 실리고, 그 별점과 코멘트는 전문 평론가는 물론 객석의 관객도 함께 했다. 이 방식은 서태지가 '난 알아요'로 데뷔하던 시절 평론가 이백천이 모 공중파 방송국에서 똑같이 재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시스템을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시스템을 요즘 다시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은 트렌드에 발맞춰 거기에 걸맞는 가수를 '제작'하는 방식 아닌가?
 

조영남 그런 절차는 자생적으로 생겨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점차적으로 내가 선호하는 류의 가수가 생겨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사례를 말하면, 요즘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아메리칸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남자 둘,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미 전역을 돌면서 심사하는 내용인데, 거기서 1등을 하면 레코드를 취입시켜준다. 심사위원의 면면도 확실하다. 그 중 영국 출신의 레코드 제작자는 완전히 스타가 됐다. 기본적인 심사방식은 노래부른 가수를 앞에 두고 코멘트하는 방식인데, 형편없이 몰인정한 코멘트가 튀어나오면 오디션 본 친구가 화내면서 나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사위원끼리의 평가도 엇갈리기 일쑤다. 그러면 그들끼리 또 싸운다.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ARS 채점 방식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오디션에 참가해서 순위에 오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가 거의 스탠더드한 팝이라는 점이다. 물론 오디션에 응하는 친구들 모두 엄청나게 잘한다. 이런 사례만 봐도 한국과 미국은 풍토가 다르다. 내가 지금 이 프로그램을 하려고 생각 중이다.


GQ 이런 프로그램이 생기면 국면 전환이 가능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강고한 모습을 띠고 있는 요즘 대중음악계의 풍토는, 노래는 필요없고 춤만 잘추면 된다는 댄스 가수들, 컴퓨터로 한 음 한 음 따다 음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가수들이 TV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런 풍토가 전체 대중음악계의 폭을 얇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조영남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시간이 흐르면 인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소리없이 사라진 가수들이 얼마나 많나. 분명한 것은 그 시스템이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 군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거다.


GQ 혹시 당시에는 70년대 대중음악계의 좌장이라 말할 수 있는 평론가 이백천 선생이 사감처럼 굴어서 분위기가 엄격했던 것 아닌가?
 

조영남 천만에! 정반대였다. 우리 때는 오디션이라는 게 없었다. 그냥 노래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되면 올라가서 노래했다.
 

GQ 앞서 말한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제작된다면 연배 있고 감식력 있는 가수, 프로듀서, 음반 제작자 등으로 심사위원이 구성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후보로 꼽을 만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조영남 질문 좋다. 하지만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한다면 나와 반대 의견을 가진 제작자, 표현력이 있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


GQ 당신이 크리티컬한 코멘트를 하면서 악역을 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조영남 악역도 하고, 좋은 역할도 하겠지. 노래라는 것은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도 하도 이렇게 불러보라고도 하고. 물론 미국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우리화되겠지.


GQ 미국과 우리는 풍토가 달라서, 미국은 스탠더드하게 노래를 잘해야 다른 노래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어느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지윤은 절대 스탠더드한 노래를 못 부를 것 같다. 그런데도 그 가수의 창법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런 노래만 좋아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지지를 보낸다. 다른 사례로 윤미래의 노래를 좋아하면 그런 노래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다는 가정하에 어떤 방식의 코멘트를 할 수 있을까?
 

조영남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뭔가를 알려주고 싶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앞서 말한 노라 존스, 에바 캐시디의 노래가 왜 잘하는 노래인지 알려주고 싶다는 거다. 찬송가도 잘 부르고, 동요도 잘 부르는 가수가 진짜 가수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거다.


GQ 당신의 언급은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10대 혹은 20대 수용자층에겐 낡은 세대의 입장으로 읽힐 수도 있다. 만약 그 세대가 당신에게 '스탠더드를 못해도 자기 노래만 잘하면 되지 않나?'라고 되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나? 예를 들어 이정현 같은 경우는 라이브 무대에서 무리수가 있어보이
지만 팬도 많다. 그리고 트렌디한 노래를 소화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중들 역시 지지한다. 그 대중들은 오히려 당신의 관점을 구세대적 기준이라고 되물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례가 당신에게 오디션을 보러 온다면 어떤 방식으로 언급하겠나?
 

조영남 그럼 이렇게 말하겠지. "너는 '바꿔'로 선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는 전혀 감동이 없다. 네가 만약 지금 셀린 디온의 'Power of Love'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네 스타일로 불러서 날 감동시키면 그때 난 널 잘하는 가수라고 인정하겠다. 그렇게 되면 '바꿔'도 잘한다고 포함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부르라는 것을 못 부르면 좋은 가수라고 할 수 없다. 만약 그런 기준을 두고 구세대라고 하면 당연히 난 구세대이다. 단지 네가 나에게 물었기 때문에, 내 기준을 대답하는 거다. 그 구세대의 기준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그냥 '바꿔'만 부르면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노래만 부를 거냐는 거다. 조금만 지나면 네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서른 살만 되면 청중은 등을 돌리는데, 그때도 '바꿔, 바꿔'만 할 거냐. 가수로서의 네 인생이 얼마나 긴데. 조금 덜 선풍을 일으켜도 지금부터 많은 사람들이 네 노래를 따라부를 줄 알아야 40세가 되어도 노래를 하고 있을 거다"라고 어드바이스할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심금을 울리는 어드바이스가 될 거다. 물론 요즘 친구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안다. 요즘 가수들은 인기를 얻지 못하면 다른 길로 간다고 쉽게 말하고 방송에 나가는 것에만 몰두해 있다. MTV 같은 프로에 몇 번째 나와서 노래하느냐 하는 게 그들의 관건 아닌가? 그런, 전전긍긍해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들을 보면 측은하다.


GQ 요즘 대중음악계 풍토 중에서 프로듀싱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어쨌든 가수를 '찍어내는' 풍토의 한 편에는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조영남 최근 한국 대중음악의 프로듀싱은 일본을 따라가는 것 때문에 망한 거다. 이수만이 가수를 조립하는 사례 같은 게 그렇다. 훈련에 의해서 가수를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음악 감성들 자체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조영남, 조용필, 김현식까지는 가수를 조립하는 게 아니었다. 찍어내는 시기는 서태지를 포함해서 그 이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탠더드를 한 번도 한 일이 없다. 비틀즈? 얼마든지 스탠더드를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스탠더드, 얼마나 좋은가. 스탠더드 없이 그냥 자기 노래만 찍어내기 시작한 걸 서태지가 턴 시키고, HOT, GOD, 신화에서부터 찍는 가수가 양산되기 시작한 거다. 내 생각에는 그 와중에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한두 명쯤은 나올 줄 알았는데, 없다. <열린음악회>에서 내가 듀엣 한번 하자고 쫓아다닐 만한 가수가 없다. 이선희 같은 가수가 나올 듯 하면서도 안 나온다.


GQ 당신은 70년대 이후 몇 년의 미국행을 제외하면 늘 현장에 있던 가수이다. 그렇다면 요즘 풍토에 대해서 비판적인 코멘트를 던질 수 있는 선배의 자격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된, '찍어내는' 가수들을 양산해냈던 이수만 혹은 가수들보다 엔터테이너만을 양산하는 매니지먼트 풍토에 대해서 비판적인 코멘트를 한 일은 없나?
 

조영남 그게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런 현상만 있을 뿐이지. 그리고 난 그런 현상을 보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비판적인 코멘트를 해대며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렇게 다양하게 살아야 된다. 애석한 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풍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왜 비틀즈가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비틀즈가 나오려면 철학도 있고, 시도 쓸 수 있는 존재들이 등장해야 된다. 우리 가사들을 보면 시라고 얘기하기 이전에, 랩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니다. 예술, 물리, 철학은 한 사람의 리더, 초인적인 경향의 영웅이 바꾸는 경향이 있다.
 

GQ 서태지에 대한 조영남의 평가가 궁금하다.
 

조영남 굉장히 재주가 많은 친구, 한국화된 독특한 한 장르를 가진 친구다. 하지만 내 취향의 음악은 아니다. 비틀즈가 아니라는 거다. 그의 시에서 한 구절이라도 좋은 게 있다면 평가가 후하겠지만, 그런 건 안 보인다. 비틀즈는 얼마나 시적인가. 너바나, 핑크 플로이드는 얼마나 어마어마한가. 그들은 시인이며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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