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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197

[평론:박유림] 70년대부터 현대까지 통키타 문화 [평론:박유림] 70년대부터 현대까지 통키타 문화 대학생활의 상징 ― 통키타 [2012년 6월 예술의 전당 공연중 송창식,제이레빗-하얀손수건,웨딩케익] 통키타란 무엇일까? 여섯줄의 악기.. 올림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는 소리.. 포크음악.. 김광석.. 대학문화... 통키타라하면 많은것을 떠올리게 된다. 기타의 역사는 한마디로 클래식 기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통키타 또는 일렉기타(Electric guitar)는 시대의 부산물이며 특히 서민들 즉 대중들이 노래와 춤을 즐길 때 흥겹게 해주기위한 반주악기로써 발전해 왔기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통키타(Acoustic guitar)와 일렉기타(Electric guitar)가 훌륭한 연주가들과 작곡가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연주용 악기로 발전하였다. 기타는.. 2008. 11. 7.
[잡지기사] 미당 서정주 인터뷰 [미당 서정주 병석 인터뷰] (중앙10/29) 송창식(90골든3집)-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하늘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계절이 눈부시게 푸르고 텅 빈 가을이라 그런지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85)씨의 위 시에 송창식씨가 곡을 부친 푸르른 날이 방송을 많이 타고 있다. 이 시가 있어 한국의 가을은 더욱 푸른 속내를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미당은 올 가을을 보지 못하고 하루 22시간 이상 누워만 있다. 지난 10일 아내와 사별한 이후 미당은 곡기를 거의 끊다시피했다.하루 몇 숟가락씩 먹던 호박죽과 홍시,그리고 세캔씩 마시던 맥주까지 놓아버렸다는 소식에 불안해진 기자는 27일 밤 남현동 예술인마을 자택을 찾았다. 기자를.. 2008. 11. 7.
[칼럼:조희창]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그리움 조희창의 소리나는 편지, [속보, 연예오락, 주간지] 2002년 07월 11일 (목) 23:07 송창식-애인 한3년 전쯤 되었나? 대학로에서 카페를 하고 있을 때죠. 아마도 밤 11시쯤, 오늘처럼 비가 치덕치덕 내리고, 가게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문 닫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홀 로 창가에 앉았더랍니다.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모습을 나는 저만치 카운터에 앉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미당 의 시 인연설화조를 읽는 것처럼, 아, 저 여인은 또 어떤 인생 의 곡절을 걸어, 이 비 오는 밤에 홀로 내 가게에 앉아 있는 것일까? 라며 시적인 상상력을 피워 올렸겠죠. 주문한 와인 한 잔과 마늘 소스를 바른 바케뜨를 가져다 줬습니다. 여인이 살짝 웃으며 맛있.. 2008. 11. 7.
[평론:정홍택] 동해의 태양 [평론:정홍택] 동해의 태양 송창식(세시봉 친구들CD중)-내나라 내겨레 김민기와 양희은이 등장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둘 다 대학교 재학 때였다. 김민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양희은은 서강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60~70년대에는 시민회관이었고, 대강당 북측에 소강당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공원처럼 되어 있는 곳에 소강당이 있었는데 객석이 한 200여석쯤 되는 작은 홀이었고 결혼식을 많이 하던 그런 곳이었다. 그날도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가 있는데 가요평론가 이백천씨가 "깜짝 놀랄 만한 젊은 애들을 꼭 소개시켜 주고 싶다"면서 김민기와 양희은을 데리고 그 시민회관 소강당으로 왔다. 김민기는 서울대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있었고 ,양희은은 그.. 2008. 11. 7.
[평론:서강대] Contemporary Folk Music in Korea GaYo/Folk Contemporary Folk Music in Korea [트윈 훠리오] Two know you is to love you(1969 아이 러브유) Koreans love to sing. One of the things that a foreigner notices here is that singing is a much more common and important activity than it is in western countries. Even before the karaoke explosion, Koreans sing at many occassions that others would find strange and many travel guide books warn visitors t.. 2008. 11. 7.
[평론:조영남] 30년 친구 송창식 [30년 친구 송창식] 조영남, 내가 만난 사람들 [조영남,트윈폴리오] 희미한친구의대답소리 인간답게 사는 진짜 아웃사이더…속을 알 수 없어 십수년 전 아내와 함께 땅을 보러 경기도 퇴촌 근처를 배회한 적이 있다. 길가 먼지 낀 복덕방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허름한 복덕방 안에서 두 남자가 한가롭게 바둑을 두는데, 그중 한 사람은 당대 최고 가수인 송창식이었다. 현대철학에는 진짜로 인간답게 사는 인간을 지칭하는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멋진 용어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은 무늬만 그런 냄새를 풍길 뿐, 진짜 그렇게 문 밖에서 유유자적 살아온 아웃사이더는 바로 내 친구 송창식이다. 송창식을 처음 만난 건 30여년 전, 음악 좀 한다는 대학생들의 아지트이던 무교동 경음악 감.. 2008. 11. 7.
[평론:조영남] 송창식의 쎄시봉 데뷔 [평론:조영남] 송창식의 쎄시봉 데뷔 세시봉데뷔때 부르신 Una furtiva lagrima (남몰래흐르는 눈물) 2014년 11월 23일 '쏭아'에서 쎄시봉 시절, 송창식의 출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쎄시봉으로의 출현은 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송창식의 경우 그 극적 구성이 두드러졌다. 홍익대 출신의 명사회자 이상벽으로부터 오늘의 쎄시봉 가수가 소개되었다. '송창식!'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에 낡은 밤색 군화를 무겁게 끌면서 한 인간이 쎄시봉의 간이무대를 향해 층계를 올라서고 있었다. 기타를 둘러맨 사나이가 허수아비 모양의 팔과 의족처럼 따로 노는 다리를 이끌며 쎄시봉 무대에 올라왔다. 흙 퍼 올리는 기중기의 몸짓으로 기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엷은 미소가 큰 입에 번져 .. 2008. 11. 7.
[신문기사] 송창식을 돌려다오 [신문기사] 송창식을 돌려다오 [송창식]그래그럴수도있겠지-19980121MBC가요콘서트 1998.8.31.월 / 딴지 연예부 기자 우리 엄니의 '스타'는 송창식이다. 이 노친네가 어쩌다 한번씩 송창식이 TV에 나오면 그 앞에 바짝 다가 앉아 넋을 잃고 보신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즉시 우리 아부지의 염장 지르기가 들어간다. "쟤는 왜 가재미 눈을 하는거냐, 약 먹었냐, 한 손은 왜 쳐들고 지랄이야..." 그럼, 우리 엄니는 " 뭐요? 참네 이 아자씨가 예술을 모르네 예술을... " 그 즉시, 20년짜리 논쟁이 불이 붙는다. 논쟁은 아주 간단하다. 엄니 : " 송창식은 예술가다 ! " 아부지 : " 송창식은 약 먹었다 ! " 그리고는 두 분다 30대의 자식들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득전.. 2008. 11. 7.
[신문기사] 송창식.윤형주.김세환 포크 1세대 3인방 [신문기사] 송창식.윤형주.김세환 포크 1세대 3인방 송창식,윤형주,김세환['90 CD1] - 09 Try To Remember 가수 윤형주와 송창식은 지난 1967년 서울 무교동 쎄시봉에서 처음 만났다.통기타 치며 아리아를 부르던 괴짜 청년 송창식의 모습을 윤형주는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한다.부를 줄 아는 팝송이 한곡도 없던 서울예고 성악과 출신의 송창식에게도 팝송을 줄줄 꾀는 윤형주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렇게 첫 대면을 한 두 사람은 이듬해 ‘하얀 손수건’의 전설적 듀오 트윈 폴리오를 만든다.여기에 72년 “트윈 폴리오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김세환이 가세한다.그렇게 세 남자 송창식(55),윤형주(55),김세환(54)의 서른해 인연은 시작됐다. 포크 1세대 3인방이 오랜만에 한무대에 선다.일.. 2008. 11. 7.
[평론:조희창] 송창식의 젊은 노래들 [송창식의 '젊은 노래들'] 조희창의 소리나는 편지, [연예오락] 2002년 02월 07일 (목) 14:39 좋은 음향 기기로 완벽한 음을 담은 요즘의 음악. 하지만 여백을 살린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의 음악을 당해낼 순 없습니다. 얼마전 전라도의 산사들을 돌아보다가 거의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좀 크다 싶은 절마다 전통 찻집을 끼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불교 명상음악들이란 것이 한결같이 신디사이저 반주에다 무겁고 지루한 목소리로 소위ꡐ지혜의 말씀ꡑ을 낭독하는 것이었어요.ꡐ산사ꡑ와 ‘신디ꡑ는 발음은 비슷할지 몰라도 정서상으론 완전히 배치되는 말입니다. 그런 식의 신디사이저 음악엔 도무지 여백이란 게 없거든요. 그런 배경 음악에 그런 지혜의 말씀은 깊이나 무게의 강요를 넘어, 조악에의 .. 2008. 11. 7.
[평론:손재현] 가수 송창식, 그의 행복 [평론:손재현] 가수 송창식, 그의 행복 [폰사용] 송창식.윤형주.김세환-희망가 가수 송창식은 행복한 사람이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행복한 한량이다.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방금 탈출한 그는 흥에 겨워 얼씨구 어깨를 들 썩이고, 정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하다는 듯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엉망으로 구겨진 얼굴로 아예 눈을 감다시피 노래를 한다. 참 부러운 사람이다. 송창식이 부자인가? 송창식이 미남인가? 그에게 근접못할 권력이 있는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번잡스러움과 하루에도 수십번 뒤집어지는 희노애락 을 떨치고, 진정으로 잊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적어도, 무대 위의 그의 노래는 세 상살이의 어두움은 없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사소하고 별볼일 없는 작은 일상 이 그저 즐거워진다.. 2008. 11. 7.
[평론:이지은] 살아있는 포크 음악의 전설 [평론:이지은] 살아있는 포크 음악의 전설 “고등학교 중퇴했지만 게임메이커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아들 결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송창식의 라이프 스타일은 다른 사람들과 정반대다. 그는 새벽 5시쯤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오후 2시쯤 일어난다. 부인이나 아이들은 물론 그 누구도 오후 6시 이전에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2시부터 6시까지 네 시간 동안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만의 시간이기 때문. 그는 이런 밤낮이 바뀐 생활을 30년이 넘게 해왔다. “보통 2시쯤 일어나는데 6시까지는 방 밖으로 나가지를 않아요.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운동도 하거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냥 방에서 빙글빙글 돌아요. 그냥 한두 시간 정신없이 돌거든. 그거 참 좋은 운동이에요. 밖에 나갈 필요도 없고. 이런 생활 때문에 집.. 2008. 11. 7.
[평론:최규성] 기타 선율에 실어보낸 고단한 삶 기타 선율에 실어보낸 고단한 삶 사랑의 앨범 송창식-잊으리라(1986.11.26) 가수들 조차도 노래잘하는 가수로 찬사를 보냈던 송창식. 그가 들려준 서정적이고도 신명나는 노래가락들에 자유로왔던 70년대 젊은이들은 없었다. 포크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30여년동안 걸어온 음악세계는 성악, 팝송, 포크, 트로트에서 국악적 요소가 녹아든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실로 형형색색이었다. 명 짧기로 유명한 대중가요계에서 그의 질긴 음악생명력은 무엇보다 더 모든 계층을 포용한 편안한 노래가락에서 얻어졌다. 또한 바보스럽게 히죽 웃는 모습은 그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함을 주었다. 송창식은 동시대 모든 젊은이들이 노래 한곡쯤은 외우고 다녔을 만큼 사랑받았던 국가대표급 통기타 가수였다. 1947년 경찰관이었던.. 2008. 11. 7.
[평론:손종국] 마음으로 만난 사람 [속 별들의 고향 OST1978]10.청포도를아시나요-송창식 한 번 태어난 인생 이 사람처럼 살아 볼만하지, 얼쑤쿠나 하며 장단을 던지는 폼이 어디 굿판이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물패가 몰려든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온통 무대로 몰아들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순식간, 온통 분위기는 통기타 살풀이 신명에 정신을 못 차리고 관객들은 얼싸둥게가 절로 나오고야만다. 기타 하나 둘러메고 삐딱하게 건들거리는 모습이 얼핏보면 백수건달인 냥 싶기도 하고, 푸짐한 웃음 한 번 받고 나면 그것도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지금은 어디에 자리를 틀었는지 참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판이다. 칠, 팔십 년대, 대학가건 어디건 이 사람 노래 한 곡조 못 외우고 다니면 취급 못 받던 때도 있었다. 당시 동네 코흘리개들도 '왜불.. 2008. 11. 7.
[신문기사] 우리정서 깊은 곳 울림 찾는 노래꾼 송창식/우리정서 깊은 곳 울림 찾는 노래꾼(가요 30년:5) ◎「트윈폴리오」 이후 「외국 것」 탈피 노력/「고래사냥」 70년대 상처받은 젊음 달래 송창식['87 다시 부르는 노래] - A01 고래사냥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자 떠 나자 동해바다로…>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된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송창식 작곡, 최인호 작사)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암울하게 은유하고 있다. 작은 북으로 연주하는 행진곡풍의 전주에 이어 공명이 큰 송창식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 노래는 흥겹고 힘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노래는 겉은 멀쩡한 채 유신체제에 갇혀 속으로 병을 앓고 있는 74년 .. 2008. 11. 7.
[평론:대전대] 송창식의 노래 [평론:대전대] 송창식의 노래 [폰사용용] 송창식['87 다시 부르는 노래] - A03 쉬-잇! 1968년 번안곡 꾸러미를 안고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는 통기타 붐의 한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를 담은 데뷔 앨범과 와 를 담은 두번째 앨범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한국 싱어송라이터 계보의 거장이 될 것임을 예감케 했다. 70년대 초반 와 의 성공으로 주류의 달콤함으로 기우는가 했으나 1975년 영화 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와 을 터뜨림으로써 우리의 불우했던 청년문화의 마지막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와 을 담은 1978년 앨범을 신호탄으로 하여 외로운 거장의 반열에 오른다. 이 앨범에서 송창식은 우리에게 대중음악의 예술적 품격을 가르쳐 주고 있다.. 2008. 11. 7.
[평론:최규성] 송창식-그의 노래, 그의 인생 송창식 (71애창곡모음1집) A01.창밖에는비오고요 [평론:최규성] 송창식-그의 노래, 그의 인생 기타 선율에 실어보낸 고단한 삶 그를 국민가수라 불렀다 가수들 조차도 노래잘하는 가수로 찬사를 보냈던 송창식. 그가 들려준 서정적이고도 신명나는 노래가락들에 자유로왔던 70년대 젊은이들은 없었다. 포크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30여년동안 걸어온 음악세계는 성악, 팝송, 포크, 트로트에서 국악적 요소 가 녹아든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실로 형형색색이었다. 명 짧기로 유명한 대중가요계에서 그의 질긴 음악생명력은 무엇보다 더 모든 계층을 포용한 편안한 노래가락에서 얻어졌다. 또한 바보스럽게 히죽 웃는 모습은 그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함을 주었다. 송창식은 동시대 모든 젊은이들이 노래 한곡쯤은 외우고 .. 2008.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