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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우먼센스] 송창식,한성숙 부부의 결혼생활 28년

by 팬더54 2008. 11. 10.

2004년 12 월호

 


 
송창식, 한성숙 부부의 독특한 결혼생활 28년


노래하는 도인
밤 10시. 미사리 카페촌은 아직 한낮이다. 청춘은 갔어도 음악은 늙지 않는 법. 송창식의 ‘푸르른 날’은 여전히 푸르고 시리다. 살포시 감은 눈, 적당히 술에 취한 듯 흥에 겨운 송창식표 얼굴도 그대로다.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는 팬들의 박수소리를 뒤로하고 그가 카페 뒤편에 있는 출연자 대기실로 향한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인터뷰는 야심한 시각에 대기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는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보이차를 기자에게 끊임없이 따라주면서 마셨다.

 

“석 달 전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이 차가 잇몸 건강에 좋대요. 요새 제가 잇몸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있거든요. 잇몸이 나빠서 확 늙었어요. 쉰아홉이니 늙을 때도 되었지 뭐.”

 

그는 나이 듦과 늙음을 거부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노라 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게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아 좋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오래전부터 품어온 궁금증 하나를 던졌다. 노래할 때마다 눈을 감는 게 혹 관객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건 아닌지 말이다.

 

“일부러 감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나도 모르게 감아지는 거지. 젊었을 때부터 그랬어요. 습관이지 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엔 왜 그랬을까? 어쨌든 노래 잘하려고 감지 않았을까? 그런데 노래는 몰입하면 별로 안 좋아요. 몰입이 너무 깊어지면 무아지경에 빠지니까. 노래는 부르는 내가 아니라 듣는 상대가 취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가수는 노래할 때 냉정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냉정해 보인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송창식이 짓는 특유의 미소는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그는 노래할 때뿐만 아니라 누구든 얼굴을 마주치면 빙그레 웃는 버릇이 있다.

 

“웃는 버릇은 고등학교 때 생겼어요. 서울예고에 다녔는데, 우리 반 50명 중 남학생은 나를 포함해 5명뿐이었지요. 수줍음을 많이 탈 때라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으로 모면하곤 했는데, 주위에서 보기 좋다고들 해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그의 얼굴이 사춘기 소년처럼 금세 발그레해졌다. 생각만으로도 풋풋했던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때 그 시절 자신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많은 소녀 중 한 사람과 결혼했다. 친한 서울예고 동기동창으로 쌍둥이 동생인 한성숙씨가 바로 그 주인공.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정사 쪽으로 흘러갔다.

 

그는 기자들은 물론 가수들 사이에서도 살고 있는 집을 공개 안 하기로 유명하다. 바깥사람을 함부로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 부인에 대한 예의 때문이란다.

 

“집은 나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집사람 공간이기도 하죠. 나야 언제든 누가 와도 좋지만 우리 집사람은 성격이 그렇지 않아요. 아내에게 집은 옷을 벗고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죠. 그렇다고 사람을 아예 못 들이게 하지는 않아요. 미리 전화해서 약속을 잡고 올 경우에는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전 양해 없이 올 경우에는 아무리 친한 친구가 와도 내쫓지요. 절대 못 만나게 합니다.”

 

그는 집에 대한 모든 권한은 전적으로 아내가 행사할 수 있도록 양보했다. 대신 자신은 바깥 생활에 대한 자유를 보장받았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안과 밖의 선을 정확하게 긋는 게 쉽지 않은 법인데, 그는 용케도 잘 구분해서 생활하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저희도 수없이 부딪쳤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선이 있더라고요.”

 

 
 
아내는 사업차 서울 나가고 퇴촌엔 그 혼자
올해로 결혼생활 28년째인 그는 요즘 부인과 따로 살고 있다. 사업가로 변신한 부인은 서울에서 첫째, 둘째와 함께 살고, 그는 경기도 퇴촌에서 막내딸, 처형과 함께 살고 있다. 부인이 어떤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라며 대답을 피한다. 대신 “큰아이는 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둘째 아이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막내는 용인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며 세 자녀의 근황을 전했다.

 

그는 그 나이의 많은 한국 아버지들과 달리 아이들 교육에 무척 개방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 세 자녀를 모두 시골에서 자유롭게 키웠을 만큼 교육에 대한 자기 철학도 분명하다.

 

“난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두었어요. 그런 날 보고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나는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좋아요. 다만 부당하게 대접받을 일이나 남에게 피해줄 일은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아이들이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건 솔직히 부모 욕심 아닌가요?”

자녀 교육에 관한 한 부부가 크게 이견이 없다. 부인의 경우 처음에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았지만 살면서 비웠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게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자유방임식 교육이란 게 좋게 보면 구속이나 간섭 없는 자유지만 나쁘게 보면 무관심이고 방치다. 다른 집 부모들과는 좀 색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엄마나 아빠가 자기들한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면 이것저것 요구 사항이 있었을 텐데 그런 적이 없어요. 비교적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도 어려요. 직장생활을 하는 놈도 나보고 아직까지 아빠라고 불러요. 큰애는 벌써 장가갈 때가 넘었는데 집사람이 자기 사업 성공하면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집사람과 큰애는 사업 파트너나 다름없어요. 큰애 사업이 집사람 사업에 많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부인이 사업 때문에 바쁜데다 따로 살다 보니 퇴촌 집에는 송창식 혼자 있을 때도 많다. 그래도 끼니 걱정 빨래 걱정은 없단다. 함께 사는 처형이 뒷바라지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도 빨래나 부엌일은 총각 시절 자취를 하며 어느 정도 쌓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

 

그는 아내든 처형이든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하는 걸 원치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이런 생각이 결혼 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아니다. 결혼 때만 해도 그 역시 다른 많은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권리를 갖고 의무를 갖는 관계를 맺기 위해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더군요. 그런데도 그걸 못 놓은 건 여자, 남자란 속성 때문이에요. 관계를 맺을 때 남자는 상대방을 ‘찜’해놓는데 여자는 ‘짱’ 박는 편이에요. 잡아다가 자기 안에 놔두는 거죠. 그런 기질은 남자에게도 있기 때문에 이상한 게 아닌데 문제는 정도예요. 사람과 어울려 사는데 소유되고 소유하는 일이 없으면 삶이 무미건조하고 외롭죠. 없으면 안 되는데 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에게 과하지 않은 접점을 찾기 위해 젊었을 때 그는 아내와 부단히 싸웠다고 한다. 그 시간이 10년 정도 되자 사랑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더란다. 그 과정 중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헤어짐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대중이 알고 있는 가수 송창식과 그가 말하는 자연인 송창식 사이엔 꽤 큰 거리가 있다. 송창식은 자연에 근거를 두고 산다는 것이 가장 큰 편견. 운전도 못 하고, 정보화 시대의 생활기기인 컴퓨터와는 어울리지 않을 거란 게 대표적인 것들. 


 

 
우먼센스 2004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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