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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평론] 동아일보-세상이 따뜻해지는 말 ‘우리’

by 팬더54 2008. 11. 10.


[문화칼럼]세상이 따뜻해지는 말 ‘우리’....장영희


1991년 대학가요제 송창식-우리는

[동아일보 2005.09.06 03:03:08]



[동아일보]무심히 라디오를 켜니 오랜만에 가수 송창식 씨의 ‘우리는’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작년에 가르친 ‘번역연습’이라는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단편소설 영역을 시킨 적이 있다. 그중 한 문장에서 ‘우리 남편은 의사인데요’라는 대목을 어떤 학생이 ‘Our husband is a doctor’라고 번역했다. 무심히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지만, 결과는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즉 일부다처제에서 한 남자의 부인들이 자기들의 남편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새삼 생각해 보니 우리말은 ‘나의’와 ‘우리’를 섞어 쓰는 유일한 언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라고 하면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이번 2월에 졸업한 상호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저는 비행 청소년이었거든요. 방황하고 외로웠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무척 잘해 주셨지만 반항만 했죠. 근데 한번은 패싸움을 하고 머리가 터져 들어왔는데, 그 선생님이 붕대를 감아 주시며 말씀하셨어요. ‘우리 상호 피를 많이 흘리네, 어떡하지?’ ‘우리 상호’라고 하셨어요. 그 말, 우리라는 말이 제 가슴을 때렸어요. 날 그렇게 마음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정신 차렸죠.”


상호의 삶을 바꿔 놓은 말, ‘우리’는 새삼 생각하면 참 요술 같은 말이다. ‘나와 그 사람’의 평면적 관계가 ‘나의(우리) 그 사람’이 되면 갑자기 아주 친근한 관계, 내가 작아지고 그 사람이 커지는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그냥 선생님보다는 우리 선생님, 그냥 학생보다는 우리 학생, 우리 친구, 우리 동생, 우리 그이, 우리나라 등등… 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말이다.


어제 미국에 유학 간 제자에게서 카드를 받았다. 첫마디가 ‘장영희 선생님께’가 아니라 ‘우리 선생님께’로 시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시잖아요.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시잖아요. 우리 선생님, 제발 빨리 나아 주세요.”새삼 나도 상호처럼 ‘우리’라는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누군가가 나를 지켜 주고 있다는 확신이….


‘빨리 나아 주세요’라니, 마치 내 병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고, 마치 내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나아 달라는 말 같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언제 진정으로 이렇게 ‘우리’라고 말해 본 적이 있는가. 한 발짝 떨어져서, 나는 나, 너는 너로 살아가며, 진정한 ‘우리’로 남을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오드리 헵번이 화려한 배우생활을 접고 노년에 봉사생활을 시작하며 한 말이 생각난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 준 것은 많은 사람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사랑할 차례입니다….”어쩌면 지금 내 병에서 나를 구해 주고 있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우리’ 마음이다. 나를 우리 가족, 우리 이웃으로 생각해서 보듬어 주는 마음, 걱정해 주는 마음, 무언가 해 주고 싶은 마음… 이렇게 받기만 하니 나도 이제는 호두껍데기 같은 ‘나’에서 벗어나 ‘우리’를 생각할 차례다.


송창식의 노래는 계속된다. ‘우리는…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함께 지녔다…우리는….’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 생명처럼 소중한 빛을 따라 천천히 어둠을 헤쳐 나아간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장영희 교수는 유방암을 이겨 낸 지 3년 만에 다시 척추암을 앓고 있지만 강의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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