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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Life & Culture] 창식.형주.세환이가 돌아왔다

by 팬더54 2008. 11. 8.


[Life & Culture] 창식.형주.세환이가 돌아왔다


하나의 결이 되어 2집 1984년 1월(1984년 3월)

1968년 겨울


여대생들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무대 위의 두 청년은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시작하려 하지만 쉽지않다. 환호성이 너무 커 서로 키(key)를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한 인상의, 각시탈을 연상케하는 한 명이 긴 장발을 쓸어넘기며 객석을 향해 '쉬~'하고 입에 손가락을 갖다댄다. 이내 환호성은 잦아지고 잔잔한 정적이 찾아올무렵 두 명의 청년은 기타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1968년 겨울, 무교동에 위치한 음악감상실 '세시봉'의 한 장면이다.


포크 빅3를 만나다


''''트윈폴리오의 윤형주(55)와 송창식(55), 그리고 '길가에 앉아서'의 김세환(54). 국내 포크 빅3가 다시 뭉쳤다. 지난해 양희은씨와 함께 뭉쳐 20년만에 무대에 섰던 이들은 당시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포크와 함께 젊음을 보냈던 40,50대에게 '추억'을 되돌려주고자 올 봄 다시 무대에 선다. 오는 26일, 27일 양일간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콘서트를여는 이들은 장발에 청바지, 통기타를 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예정이다.(1588-7890/1588-1555/02)561-4712)

인터뷰차 만난 이들은 50대라는 나이가 생경하게 느껴질 만큼 탱탱한 피부와 늘씬한 몸매를 자랑했다. 오후 6시 63빌딩의 59층의 모 식당에서이뤄진 이 날 인터뷰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김세환 씨. 10여분 후에 윤형주씨가 도착했고, 한동안 이들과의 대화가 계속됐다.

실제로 이 시간에 이들과 인터뷰를 성사시킨다는 것은 거의 기적같은 일이다. 그것은 바로 20년넘게 밤낮을 바꿔 생활하고 있다는 송창식 씨 때문이었다. 보통 오후 7시정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다음날 새벽 잠자리에 든 다는 송 씨. 하지만 7시가 못 돼 송 씨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냉철한 이성 윤형주

""''''"교회 다니시나요?" 윤형주씨는 이렇게 물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윤형주 장로. 그는 현재 광고음악을 제작하는 '한빛기획'의 대표로, 주차용역업체 '인파크'의 대표로, 사회사업가로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연세대학교 의대생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으로 세인의 관심과 부러움을샀던 그는 현재 1남 2녀의 아버지로 단란한 '기독교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량한복의 각시탈 송창식

""''"아, 죽겠다. 잠이 안깨. 이 시간에 내가 돌아다니다니" 인터뷰장에 나타난 송창식은 이렇게 인사를 갈음했다. 송 씨는 자신의 뒤바뀐 낮과 밤을 최대한 이용한 경우. 그는 현재 미사리의 카페 '록시'를 운영하고 있다. 여차하면 자신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고.

''''''송창식은 현재 아내 한성숙씨 그리고 '결''무늬''빛터' 등 3명의 자녀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영원한 젊은 오빠 김세환

이 사람이 과연 50대인가. 30대라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1남1녀의 아빠김세환.

"''""우리 3명중에 '가수'라는 본업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역시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적성이 맞지 않았던지, 아니면 능력부족(?)인지 번번히 실패했던 것. 마지막 사업인 일식당을 끝으로 이젠 사업쪽과는 연을 끊었다.

''취미는 산악자전거, 스키, 채팅. '채팅'이라 역시 젊은 오빠 답다.


그들이 말하는 그 때 그시절, 그리고 포크


""""''"운이 좋았어. 그땐 우리 밖에 없었어. 다른 팀이 없었거든"(윤형주) "맞어, 맞어"(송창식, 윤형주) 그들은 당시의 인기를 '운'으로 돌렸다.

"''""그 땐 학생가수란게 없었어요. '가수'하면 트로트 가수, 아니면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밴드들, 그게 전부 였거든. 근데 파릇파릇한 우리가 외국곡을 들고, 기타 달랑들고 무대에 서는게 먹혔던 것같애요. 싱어송라이터의 원조라고 할까요."(송창식)

"""팬레터가 수백장 넘게 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스토커같은 친구들도 있었던 것같구. 공연이 끝나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지. 지금이야 차가있어 차타고 나가면 되지. 그 땐 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갈때까지 무대뒤에서 그냥 앉아있는거야"(윤형주)

"''''""데모하면서 형주형하구 자주 만났어요. '투쟁하라'고 외치다 '형, 우리오늘밤엔 뭐 부를까?'하고 물었죠. 그때의 포크는 젊은이들의 밤의 노래였던 것같아요"(김세환)

"''""우리의 포크는 '저항정신'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요. (한)대수나 이후민기, 희은이 등으로 가면서 포크가 저항과 개혁을 꿈꾸는 청년문화의깃발이 됐던 것같습니다." (윤형주)


2002년 봄


''이들의 이번 콘서트의 정식 명칭은 '포크 빅3와 료쿄의 캠퍼스 콘서트'다.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자는 취지로 일본 통기타문화의 개척자인 모리야마료코와 함께 무대에 서는 코너도 마련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연습은 별로 안하시죠? 서로 잘 알잖아요'라고 운을건넸더니 3명 모두 반색을 하고 답한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날로 먹을려구 그러는 줄 아나"(송창식) "지금부터 세환이네 집에가서 새벽까지 지옥훈련들어갑니다"(윤형주) "아, 아, 이제야 목이 좀 풀린다(웃음)"(김세환) 마치 3명의 고등학생을 연상케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 했던가. 우리나라의포크 1세대인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50대의 청춘'을 직접 볼 수 있는좋은 기회였다. 혹시 '포크'가 이들을 젊게 만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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