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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평론:강헌] 대중음악 거장들 다 어디 갔나

by 팬더54 2008. 11. 8.

[스포츠월드]대중음악 거장들 다 어디 갔나

[세계일보 2006-01-16 20:05:28]


 

숱한 걸작들을 쏟아낸 통기타 음악인들말초신경 자극하는 값싼 노래들에 밀려나지금 미래를 향한 그들의 예술 혼이 그립다


꼭 십년전 새해 벽두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올해 나의 관심은 침묵하고 있는 거장에 대한 외로운 기대이다. 1986년 ‘담배가게 아가씨’, ‘선운사’ 등의 걸작을 담은 앨범을 끝으로 새로운 앨범을 내지 않고 있는 송창식의 목소리를 1996년에는 듣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가 줄기차게 추구해온, 하지만 아직 완전한 결실을 맺었다고는 할 수 없는 우리 전통음악을 향한 그의 음악적 집념이 성숙하게 발효되어 우리를 경악시키기를 또한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시간은 또 다시 십년이 흘렀고 우리 대중음악사의 거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는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과 포크 빅4 콘서트를 통해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의 ‘내 나라 내 겨레’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불려지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미사리의 통기타 카페에서 매일밤 화석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가 침묵하는 이십년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언더그라운드의 폭풍이 일었나 하면 서태지의 도발이 있었고 아이돌 그룹들이 천하를 나누었는가 하면 디바들이 섹시함을 겨루기도 했다. 그리고 음악은 모바일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의 배경 음악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이제 삼십대 후반, 혹은 사오십대의 희미한 추억으로만 간신히 걸려 있는, 이른바 흘러간 가수의 한명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가왕 조용필에 겨룰 수 있는 단 한명의 거장은 단연 송창식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을 가장 숭고하게, 가장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킨 단 한명의 대중음악가를 꼽는다고 하더라도 그 영광은 아무래도 송창식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1968년 윤형주와 트윈 폴리오라는 통기타 듀엣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십년에 이르는 음악 생활 동안 숱한 사랑의 걸작들을 낳았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꽃보다 귀한 여인’ ‘애인’ ‘상아의 노래’ 같은 소박한 포크 스타일의 발라드를 발표한 송창식은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예술 가곡의 권위를 가볍게 넘어선 ‘그대 있음에’를 발표하고 연이어 78년 ‘사랑이야기’라는 불후의 걸작을 토해낸다. 이 노래는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사랑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임을 증명해 내는 거의 완벽한 노랫말과 그것과 한치 빈틈도 없이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악절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고전에 값하는 노래인 것이다.


‘사랑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경지에 올라선 그는 8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숨돌릴 틈 없이 기념비적인 후속 곡들을 쏟아낸다. 그들 중 대표적인 두 곡은 ‘우리는’과 ‘푸르른 날’이 될 것이다. 이 노래들은 얄팍하게 말초적인 신경만을 건드리고 사라지는 요즘의 값싼 노래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웅혼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성공 지상주의와 한탕주의에 병들어 있는 우리 대중음악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한 것이다.


1984년이었던가 마흔다섯살의 티나 터너가 ‘Private Dancer’를 발표하며 미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놀라운 컴백을 감행하며 세계를 전율에 빠뜨렸다. 만고풍상을 겪은 늙은 여성 댄스뮤지션의 화려한 재기에 세계의 대중음악팬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1994년엔 70년대를 불태운 그룹 이글스가 14년 만에 ‘Hell freezes over’라는 언플러그드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식지 않은 음악의 열정을 과시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에서도 7080의 리바이벌 붐이 브라운관 매체와 공연을 통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좋았던 옛날의 향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중은 그것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창조적인 몸부림이 뜨겁게 제시되지 않는 한 그것은 그저 추억의 기획 상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 이제 어제의 거장들이 회심의 예술혼을 불태울 시간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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