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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기사:조선일보] 1997년-무교동의 어제와 오늘

by 팬더54 2008. 11. 10.

 

 

무교동의 어제와 오늘 (1997.06.16)

 

무교동은 옛부터 주점과 음식점이 많았던 유흥가다. 중부소방서가 있던 자리에서 광교에 이르는 5백여m 무교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펼쳐진 무교동과 다동엔 오락장, 대중음식점, 극장식당, 나이트클럽 들이 빼곡했다. 좁은 도로에 골목길도 많았다.
70년대만 해도 서울을 찾은 관광객들이 서울의 밤을 즐기러 찾았 고, 장안의 내로라 하는 멋쟁이들이 호기부리며 드나들던 곳이었다. 다동쪽은 고급집이 많았고, 무교동 쪽은 서민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광교에서 세종로까지 큰 길이 뚫리고, 80년대 들어 도심지 재개발지 구로 지정돼 큰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조영남이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들락거렸던 60년대엔 주변에 큰 건 물이랄 게 거의 없었다. 좁은 골목길에 고만고만한 단층 가옥들이 다 닥다닥 붙어있었다. 쎄시봉이 있던 공안과 뒤쪽은 서린동에 속하지만, 지금은 없어진 낙지골목까지 한데 묶어 흔히 무교동이라 불렀다.

 

그 시절 무교동엔 장안 최고 나이트클럽으로 이름을 날리던 스타 다스트가 위용을 자랑했다. 코파카바나가 이와 경쟁하며 쌍벽을 이뤘 다. 무교동 골목길엔 값싼 비지찌개와 돼지뼈 감자탕을 파는 허름한 음식점들이 많았다.

 

""밤이면 대학생들은 물론 호주머니 얄팍한 직장인들과 문화예술인 들이 몰려들어 찌개와 빈대떡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조영남 은 "낙지골목이 생긴 건 훨씬 나중 일"이라고 기억했다.

 

''이 동네를 아지트로 삼았던 '청바지 문화의 전도사들'은 을지로 쪽에 붙은 샤모니빵집의 싼 빵을 잊지 못한다. 설렁탕이 유명했던 한 밭식당옆 연다방은 대학생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다. 가끔은 어른들이 주로 드나들던 무교동 골목 안쪽 일번지다방에도 진출하곤 했다 한다.

 

''''쎄시봉에는 1주일에 한번 '대학생의 밤'이라는 아마추어 장기자랑 류 프로그램이 있었다. 조영남은 물론 연세대생 박상규 윤형주 이장 희, 홍익대생 이상벽, '정체불명의 사나이' 송창식이 그 무대에서 만 나 우정을 키웠다.


< 권혁종기자 >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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