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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포크1세대 & 7080붐의 주역, 트윈폴리오 (2)

by 팬더54 2008. 11. 28.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포크1세대 & 7080붐의 주역, 트윈폴리오 [2]
'싱어송라이터의 원조'들, 청년문화의 '핵'으로 부상하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저널리스트)



사진 위)트윈폴리오 고별 리사이틀(1969년 12월22일), 드라마센터.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포크1세대 & 7080붐의 주역, 트윈폴리오 [2]
'싱어송라이터의 원조'들, 청년문화의 '핵'으로 부상하다
 
60년대 말, 당시 가요팬 층의 '마이너리티'였던 10대들을 '메이저리티'로 끌어올린 트윈폴리오.
 
이들이 불과 2년 남짓 활동하던 시기, 한가운데 무렵 출시된 송창식씨 솔로 취입곡, '멀어진 사람'에 대해 송창식씨는 이렇게 술회한다.
 
"우리가 첫 리사이틀을 갖기 전이었어요. 당시 작곡가 손석우 선생을 만나 두 곡 정도 연습한 뒤 지구레코드사에서 이 곡들을 녹음했지요. 그러나 그 후 레코드사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아 실제로 음반으로까지 출반된 것은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던 사실입니다."
 
멤버 송창식과 윤형주, 이 트윈폴리오가 기억하는 자신들의 최초 음반은 69년 중반에 출시된 '하얀 손수건(지구)'이 수록된 음반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이들의 목소리로 취입된 노래 '렛 잇비 미'가 수록된 음반도 존재한다.
이러한 음반의 존재 여부 또한 송창식씨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윤형주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둘의 어렴풋한 기억을 조합해보면 당시 자주 어울리던 가수 조영남씨를 따라 스튜디오에서 번안곡을 몇 곡 녹음했던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 마찬가지로 이 음반 역시 실제로 출시되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기억과 기록 사이, 혹은 당시 가요계의 풍토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그 허술한 체계를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명시절의 이러한 일화들에 대해 이들은 애써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했다.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웨딩 케익', '더욱더 사랑해' '슬픈 운명' 같은 번안곡 위주로 활동했던 트윈폴리오는 각각 솔로로 전향한 뒤 각자 '싱어송 라이터 시대'를 열며 70년대 포크송시대를 주도한다.
 
이 싱어송 라이터 시대의 개막은 통기타 붐을 더욱 가속화시키며 이른바 '청 맥 통'이라 불리는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동시에 직접 통기타 하나만으로 반주까지 하면서 노래하는 이들의 모습은 곧 '선망의 대상'이자 너도나도 '흉내의 대상'이 되었다.
 
'청바지차림의 장발에 통기타를 둘러맨 모습'. 이 캐릭터가 70년대의 젊은이들을 대표적인 자화상이다. '제복의 시대에 또 하나의 표상'으로 자리한 이 캐릭터는 속칭 '빽판(불법음반)', '야전(야외 전축)'과 더불어 70년대의 멋과 낭만을 상징했다. 특히 청바지는 아무데서나 걸터앉아 노래할 수 있는 차림으로 필연적으로 통기타와 잘 어울렸다.
 
당시 청년문화, 대학문화란 신조어가 그러했듯 70년대는 온갖 10대들의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 '세대 차이'란 말이 급부상하며 10대들만의 전유물인 은어들까지 등장,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기도 했다.
 
포크송 붐의 선두주자로 '낭만파 시인'이라고 불려지던 송창식씨는 또한 밤에만 활동한다고 해서 붙여진 '밤창식', '별창식'이라는 별명에 이어 말끝마다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붙여진 '왜창식'이란 애칭으로 까지 불리며 청소년들의 화제 중심에 떠올랐다. '한번쯤', '고래사냥', '왜 불러', '새는', '내나라 내 겨레' 등을 발표하며 그는 75년 '가수왕'으로 등극했을 만큼 10대들의 인기를 넘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윤형주씨 역시 하이톤의 미성과 감성으로 '라라라', '우리의 이야기들', '두개의 작은 별' 같은 노래들을 발표하며 동시에 당시 동아방송의 심야프로 '0시의 다이얼' DJ를 맡으면서 폭넓게 10대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아울러 '포크송 붐'으로 시작된 청년문화를 급속하게 확대시킨 촉매제는 바로 '심야방송 음악프로그램들'이었다. 당시엔 기타 못 치면 간첩이었고 심야방송을 듣지 않으면 다음날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소년들의 '절대문화'이기도 했다.
 
송창식과 윤형주, 통기타 붐과 심야방송 신드롬의 중심에 바로 이들이 있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노래에 당시의 시대상을 담기보다는 정서를 담았다는 것. 때문에 이들의 노래는 유행을 건너 시대를 넘어 여전히 애창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윈폴리오, 이 '두 장의 악보'로 시작된 포크의 아름다운 노래는 다시금 '7080붐'을 일으키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글 l 박성서(대중음악 평론가/저널리스트)
- Copyrights ⓒ2006-09-07일자, 서울신문

 

 
[두개의 작은별]

[Let it be me]

[숭어]

 

 


[트윈폴리오] 추억의 히트 송(1968.12.10)중  A04.Let it b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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