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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기사] 70년대 포크가수 5人 ‘40년우정’ 첫 해후

by 팬더54 2009. 7. 22.

70년대 포크가수 5人 ‘40년우정’ 첫 해후 유인경기자  
 
 조영남·송창식·윤형주·이장희·김세환 라디오출연 추억담 나눠
“다들 개성이 강해서 살짝 삐치다가도 풀어져요”


“누가 네 머리를 이렇게 쥐어 뜯었냐.”

앞머리가 텅 비어 있는 가수 송창식씨를 보자마자 조영남씨가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디 매달렸었어.”(송창식)




MBC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1970년대 포크가수들이 출연, 추억담과 노래를 들려준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영남, 최유라,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 이장희씨. MBC제공


지안 2009년 7월 13일 밤, 서울 여의도 M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한국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1970년대 통기타와 포크송으로 청년문화 시대를 이끈 가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씨 등 5명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한 것. 각각 톱스타이고 40여년의 우정을 자랑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하거나 방송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중 가장 맏형은 45년생 조영남씨, 막내는 48년생 김세환씨, 나머지 셋은 47년생이다. 이제 모두 환갑 넘은 60대 노인이 되었으니 더 늙기 전에 추억을 만들자는 조영남씨의 권유로 그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최유라 조영남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방송(15일 오후 4시 방송)을 위해 선뜻 모였다.

절친한 사이지만 이들이 함께 모이기는 힘들다. 바쁜 일정도 그렇지만 지리적으로도 그렇다. 그동안 미국 LA에서 라디오코리아를 운영하던 이장희씨는 최근 울릉도에서 더덕농사를 지으면서 지내고 있어 육지 나들이가 쉽지 않다. 송창식씨는 경기도 퇴촌에 살지만 밤무대 활동 등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오후 4시고 오후엔 운동을 하느라 어지간한 모임엔 나가지 않는다. 교회 장로이자 봉사활동가인 윤형주씨는 전 세계를 누비며 교민들을 위한 공연과 신앙간증을 하느라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국내 최초로 산악자전거를 도입, 소개한 김세환씨는 자전거 전도사가 돼 전국을 누빈다. 이들은 1, 2년에 한 번 정도 모인다. 이장희씨가 해외에서 귀국하거나 울릉도에서 올라와 연락을 해야 겨우 모임이 만들어진다.

이들의 인연은 조영남씨와 이장희씨로부터 비롯된다. 조영남씨 고교동창의 조카가 이장희씨다. 삼촌 친구가 놀러와 노래하고 기타치는 모습에 반한 서울중학생 장희 소년은 그후 평생 조영남씨를 하늘처럼 떠받든다. 연세대에 입학한 이장희는 연대 의대생인 윤형주씨를 만나고, 그와 조영남씨는 고교 시절 같은 교회에 다닌 인연이 있다. 윤형주씨가 경희대로 학교를 옮기면서 경희대생이던 김세환씨를 알게 된다. 명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독특한 개성의 송창식씨를 만난 윤씨와 1968년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을 만든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라디오프로 <0시의 다이얼> DJ였던 윤형주씨가 이장희씨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면서 ‘그건 너’ 이장희 시대가 열린다. ‘한잔의 추억’ ‘바보’ ‘라라라’ ‘길가에 앉아서’ ‘비의 연인’ 등의 노래들을 만들어 서로 나눠 부르고, 각자 음반을 취입할 때는 반주와 코러스도 맡아주는 등 이들의 우정은 70년대 한국 포크음악사를 장식했다. 이들은 영화음악과도 인연이 깊다. 최인호 원작의 <별들의 고향>(1974년)엔 이장희씨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년)에는 송창식씨가 영화음악을 맡아 ‘왜 불러’ ‘고래사냥’ 등 히트곡을 만들었다. 당시 독재정권과 봉건적 문화에 억압받던 청년들은 한국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들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청춘의 열정과 울분을 해소했다.

“우리는 그냥 공짜로 노래를 주고, 무료로 반주도 해줬어요. 만약 지금처럼 동료들 사이에도 정이 없거나 저작권이 강화된 시대라면 불가능한 얘기죠. 그냥 모여서 노래를 불러보다 ‘네가 더 어울리겠다’ ‘그건 내가 부를 테니 나줘라’라는 말로 끝이었죠. 매일 모여 노래하다 통금시간이 되면 신부님 집에 들어가 냉장고 음식 모두 꺼내먹고 잤는데 그분이 성공회 김성수 주교님이고, 우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준 대신에 해마다 소년원에 보내 무료 공연을 시킨 분은 이태영 박사예요. 주변에 훌륭한 어르신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서 지금껏 한 번도 다투지 않고 40여년 우정을 나눌 수 있었어요. 다들 개성이 너무 강한데 그걸 다 인정해주니까 살짝 삐치다가 풀어지죠.”

15일 방송에서는 이장희씨가 공개 석상에서는 23년 만에 부른다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비롯해 송창식씨의 ‘사랑이야’, 윤형주씨의 ‘랄랄라’ 등 히트송과 이들의 아련한 추억담을 들을 수 있다. 녹음이 끝난 후에 이들은 근처 통닭집으로 자리를 옮겨 “그때 여대생 아무개가 세환이를 좋아했다” “아니다, 형주를 더 좋아했다” “창식이는 그때 정말 거지꼴이었다” 등의 유치찬란한(?) 이야기를 밤깊도록 나눴다.

조영남씨가 “처음에 형주와 장희 노래를 듣고 너희는 소질 없으니 절대 가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보다 더 히트곡이 많은 인기가수가 된 게 신기하다”고 하자 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형은 사람 볼 줄 모른다”고 웃었다. 아름다운 추억은 60대 노인들의 얼굴에 스무 살 청년의 풋풋함을 꽃피웠다.

<유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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