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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평론:조영남] 30년 친구 송창식

by 팬더54 2008. 11. 7.

[30년 친구 송창식]
조영남, 내가 만난 사람들


[조영남,트윈폴리오] 희미한친구의대답소리 



인간답게 사는 진짜 아웃사이더…속을 알 수 없어

십수년 전 아내와 함께 땅을 보러 경기도 퇴촌 근처를 배회한 적이 있다. 길가 먼지 낀 복덕방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허름한 복덕방 안에서 두 남자가 한가롭게 바둑을 두는데, 그중 한 사람은 당대 최고 가수인 송창식이었다.

현대철학에는 진짜로 인간답게 사는 인간을 지칭하는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멋진 용어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은 무늬만 그런 냄새를 풍길 뿐, 진짜 그렇게 문 밖에서 유유자적 살아온 아웃사이더는 바로 내 친구 송창식이다.

송창식을 처음 만난 건 30여년 전, 음악 좀 한다는 대학생들의 아지트이던 무교동 경음악 감상실 쎄시봉에서였다. 나는 아르바이트 삼아 미8군 무대에 출연하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행색이 나보다도 남루한 청년이 낡아빠진 기타를 메고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폼으로 나타났다. 간이무대에 오른 그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자기 스타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를 포함해 그곳에 모여 있던 가수 지망생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아! 마침내 노래의 신선이 나타났구나 싶었다.

송창식한테는 노래 만이 유일한 언어였다. 그는 애당초 외계인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통상적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 패거리가 몇 년을 거의 매일 함께 밥먹고 잠자면서 붙어다녔지만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물어봤자 딴 소리 할 게 뻔하니 아예 묻지도 않았다. 부모가 살아계신지, 형제가 있는지, 집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잃어버렸다던 엄마와 누이를 찾았는지 못찾았는지, 모든 게 안개 속이었다.

한번은 당시 최고급 과자인 콩알 모양 쵸코렛이 생겼길래 창식아, 너도 좀 먹어봐라ꡓ 했더니, 대답이 어이없었다. 난 안먹어도 돼. 집에서 실컷 먹었어. 맨날 밥에 비벼 먹어. 아니, 옷 빨아 입는 걸 몰라 가을에 입은 흰색 나일론 팬티가 이듬해 봄엔 진회색으로 변한 걸 우리가 뻔히 봤을 정도인데, 그 귀한 초코렛 과자로 밥을 비벼먹었다니 누가 믿겠는가.

그러던 송창식은 자신과 전혀 다르게 생겨먹은 귀족적인 친구와 만나 팀을 이뤘다. 경희대 초급대 학장님의 아들이며 전설적인 민족시인 윤동주의 육촌동생인 윤형주와 불멸의 듀엣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최고 스타로 자리를 굳힌 것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다가 방학 때 돌아오면 떡 벌어지는 귀국 파티로 반겨준 것도 바로 송창식 부부였다. 악기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그의 집에는 나로선 처음 보는 온갖 전자악기들이 널려 있어 기가 죽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돌아오자 송창식의 행방이 묘연했다. 간신히 수소문해보니 어느 레코드사 사장실 한켠에 야전침대를 들여 놓고 두문불출 틀어박혀 있었다. 아내가 사업을 벌였다 실패했다며, 묻지도 않는 내게 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아. 벌어 갚으면 돼. 누굴 원망하는 눈치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송창식은 그렇게 착하다는 말만으론 설명이 안되는 사람이다.

송창식 부부는 지금 퇴촌 근처 언덕배기에 집 짓고 잘 지낸다. 그런데 십수년 전 송창식이 제 손으로 집 지은 과정도 가관이다. 집은 몇 년을 미완성이었다. 어쩌다 가보면 벽돌 몇장 새로 붙어있고, 어쩌다 가보면 방바닥에 스티로폼 깔고 지내고 있었다. 돈 좀 생기면 벽돌 몇 장 사다 붙이고, 또 돈 모이면 구들장 까는 식으로 세월아 네월아 지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송창식과의 대화는 불통이다. 나는 그가 김세환 집에서 액자 뒤에 숨어있다는 귀신 얘기 하는 것을 들었다. 방송국 PD가 출연섭외를 하면 그는 대개 거절한다. 사유도 당당하다. 친구와 밥 먹을 선약이 있다거나, 그 시간엔 잠을 자야한단다. 내 어머니 장례식에 송창식만 불참했는데, 알고 보니 그 해 장례식엔 얼씬 말라는 점괘 탓이었단다.

한번은 야 임마! 넌 개량한복에 맨 날 가나다라 웩웩 대는 노래를 하면 소달구지를 타야지, 웬 케케 묵은 고물 벤츠냐고 놀린 적이 있다. 송창식은 그 넓은 어깨를 들썩하면서 씩 웃었다. 그게 송창식의 대화법이다. 우리의 송창식은 말 그대로 자연인이다.
(조영남/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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