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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칼럼] 세시봉 친구들이 남겨준 그리움

by 팬더54 2012. 3. 2.

     
                                         세시봉 친구들이 남겨준 그리움

  23/02/2012
  호주 동아일보 발췌


 지난 18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노래와 추억, 세시봉과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이라는 긴 제목의
 음악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한 세대를 주름 잡았던 세 명의 가수들이 시간을 초월해서 새롭게 인기몰이
 를 하며 해외공연을 다닌다고 한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은 60, 70년대에 포크송으로 상징되던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했던 가수들이다. 그들은 지금의 아이돌스타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리며 오빠부대를 몰
 고 다녔다.

 70년대의 암울했던 사회적인 배경은 젊은이들만의 반항적이며 독특한 청년문화를 형성하게 만든 계기
 가 됐다. 서울 충무로에 있던 음악다방 세시봉(C’est Si Bong)은 아주 멋지다는 뜻의 불어이며 60,70년
 대에 젊은이들의 청년문화를 선도했던 곳이다. 사회전반에 걸쳐서 각계의 인사를 초청해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고, 대학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가수들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한
 장소였다. 생맥주와 통기타 그리고 낡은 청바지로 상징되던 그 시대의 청년들이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거
 리는 50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세시봉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들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처럼 오랜 시간 가슴 안에 남아있다. 나의 20대를 함께 했던 바로 그 삼총사가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선다니 가슴 설레며 시드니로 날아갔다.

 환갑을 훌쩍 넘긴 아저씨들이 무릎이 튀어나온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무대에서 서로 얘, 쟤 하며
 옛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객석을 들러보니 대부분의 청중이 여성들이며 간혹 남편을 동반한 부부가 군데군데 앉아있다. 원조 국민
 MC로 불리는 이상벽의 사회로 시작된 세시봉 무대는 김세환의 옛 친구라는 노래로 시작됐다.

 하~얀 모래위에 시냇물이 흐르고
 파란 하늘 높이 흰 구름이 흐르네.지난 날 시냇가에 같이 놀던 친구는
 냇물처럼 구름처럼 멀리 가고 없는데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옛 친구…
 하얀 꽃잎 따라 벌 나비가 나르고
 파란 잔디위엔 꽃바람이 흐르네.
 지난 날 뒷동산에 같이 놀던 친구는
 어디론가 멀리 가서 소식 한 번 없는데
 그리워서 그리워서 잊지 못할 옛 친구.

 환갑을 넘긴 나이로 보이지 않는 미소 띤 동안과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는 금세 내 마음을 촉촉하게 만 
 들어준다. 객석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박자의 파도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히
 트곡인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토요일 밤에를 연이어 부르고 들어가는데 청중석은 벌써 분홍빛
 깔 열기로 채워지는 듯했다. 이어서 아홉 달의 햇살을 더 많이 받았다는 윤형주가 “세환아~” 하고 아이처
 럼 이름을 부르는데 정겨움이 그들 사이로 소~ 올~ 솔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 때 귀공자로 불렸던 윤형주의 대표곡 ‘조개껍질 묶어’를 들으니 대학시절 학과 친구들과 해운대 바닷
 가 백사장에 둘러앉아서 통기타를 치며 함께 불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고구려 시대 옷을 입
 은 송창식, 그는 순박한 시골 농부처럼 어정쩡한 웃음을 띠고 어깨는 여전히 구부정한 채 왜~~불러 라 
 고 우리들을 대신해서 소리를 질러준다. 청중들의 환호를 가장 많이 받았던 그는 지금도 아줌마 오빠부
 대의 주인공이다.

 트윈 폴리오’ 참으로 정겨운 그룹의 이름이다. 대학시절 방학을 맞아서 서울에 사는 오빠 집을 방문했을
 때면 어김없이 세시봉 음악실을 찾았고 500CC 생맥주 한잔에 나의 젊음을 담아내기도 했다.

 하얀 손수건’ ‘웨딩케잌’ ‘축제의 노래’ 어느 한 곡도 정겹지 않은 노래들이 없지만 특히 “긴 머리 소녀” 는
 가슴앓이를 하듯 그리움에 젖게 한다. 나의 긴 머리는 대학시절 4년 동안 자랑거리였으며 내 콧대를 한층
 더 높여줬다. 그런 연유로 긴 머리 소녀는 자연스럽게 나의 18번이 되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를 상징
 하는 노래처럼 돼 버렸다.

 세 가수들이 흘러간 락큰롤을 신나게 부르자 관객들은 금방이라도 엉덩이를 떨치고 일어나서 트위스트
 한판을 출 듯이 열광하기 시작한다. 아~ 이래서 음악은 사람을 밀고 당기는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구
 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CM 송. 오~~오!! 오란씨, 해태 껌 부드러운 맛, 듣고 있으
 니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늘 들려오던 익숙한 음율. 순진한 소년의 미소를
 띠고 기타를 치며 광고노래를 부르던 김세환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런 것들이 그리움이고 바로 추억이다. 그들은 나이 들어간다고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중년들에게 “당
 신. 아직도 괜찮아.” 하는 위로를 던져 준 것 같다. 몇 시간의 즐거움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긴 머리 소녀
 였던 나를 일깨워 주었다. 아쉬웠던 점은 내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단독 공연을 보지 못한 것
 이다. 뒤에서 묵묵히 반주만을 해주는 그의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온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음식이 지금
 도 역시 좋고 나의 20대를 함께 해주었던 그 노래들이 역시 좋다. 옛 친구는 지금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
 이다. 그래서 지나간 모든 것에 그리움을 가지고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
 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다. 세시봉 콘서트를 통해서 나는 왠지 안심
 하게 된다.

 황 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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