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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잡지기사] 미당 서정주 인터뷰

by 팬더54 2008. 11. 7.


[미당 서정주 병석 인터뷰]
(중앙10/29)


송창식(90골든3집)-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하늘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계절이 눈부시게 푸르고 텅 빈 가을이라 그런지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85)씨의 위 시에 송창식씨가 곡을 부친 푸르른 날이 방송을 많이 타고 있다. 이 시가 있어 한국의 가을은 더욱 푸른 속내를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미당은 올 가을을 보지 못하고 하루 22시간 이상 누워만 있다.


지난 10일 아내와 사별한 이후 미당은 곡기를 거의 끊다시피했다.하루 몇 숟가락씩 먹던 호박죽과 홍시,그리고 세캔씩 마시던 맥주까지 놓아버렸다는 소식에 불안해진 기자는 27일 밤 남현동 예술인마을 자택을 찾았다. 기자를 알아본 미당은 일어나 앉으려했으나 허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지 이내 다시 누었다.정신은 또렷했고 누워있으면서도 몸가짐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방에는 김대중대통령이 보낸 난초 화분이 쾌유를 빌고 있었고,어둠에 잠긴 조그만 마당에선 커다란 오동잎이 쿵하고 지고 있었다.


-요즘 하늘이 너무 푸릅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하늘 한번 바라보셔야지요
송창식군 노래를 말하는구먼.그 사람 노래 참 기막히지.내 시에 곡을 붙였다며 기타까지 메고 집으로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데 후련하게 확 터진 소리면서도 뭔가 서럽지 않았겠는가.그렇게 눈 부신 푸르름 속에도 설움이 있는데 우리 삶이야 오죽 서럽고 불쌍하겠는가.내가 마누라 그 불쌍한 사람한테 참 잘못했어.젊은날 바람도 많이 피우고.


아내가 고향 고창 선산으로 떠나는 영결식 날 미당은 방에 누워 30분 간격으로 옆 사람에게 물었다.지금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겠구만,이제 하늘도 편안하다는 천안을 지나고 있겠지,이제 고향 땅에 들어갔겠구만 하면서. 그리고 마치 눈에 훤히 보이듯 이 불쌍한 사람 지금 묻히고 있네, 그 옆에 네자리도 보이는구먼 하면서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글썽였다.

기자가 찾은 날 미당과 오래 말을 나눌 수는 없었다.하지만 지난 10일 이후 계속 그 방에서 미당을 보살피며 대화를 나누어온 제자인 문학평론가 윤재웅 방송작가 전옥란씨에게 이미 부탁을 해둔 터라 최근 미당의 심경을 인터뷰형식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기자는 윤 전씨에게 깨실 때마다 물어보라며 인터뷰 내용을 10일 전하고 매일 통화 등을 통해 그 내용을 정리해왔다.


-손발이 너무 차갑습니다.대통령께서도 쾌유를 비는데 빨리 일어나 관악산 바라보며 맨손체조도 하셔야지요.
이 사람아 손발만 만져보지 말고 이 가슴도 만져봐.뜨겁지. 나는 60여년을 남의 심장을 울리기위해 내 심장부터 이렇게 열정적으로 울리며 살아왔어. 심장이 너무 뜨거워 이렇게 누워있는거야. 대통령의 이번 노벨상 수상은 축하할 만한 일이야. 마누라 묻히는 날 그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더 나오더군. 약소국가에서는 정말 장한 일이지.


-수염을 기르시니 이제 정말 신선 같네요.
무슨 그런 말실수를 하시는가. 신선 같다니, 바로 신선이지. 신라 이후 신선이 많이 사라지고 내가 마지막 신선이 되어 살려고 무진 애를 썼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항상 벗하여 지내려고 말이야.그들과 텔레파시도 통하면서 살려 노력하면 그게 영원히 사는 것이고 신선 아니겠는가.


-1986년도에 선생님이 문예지를 창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호를 뭐라 할까 궁금해했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정신이라 정했더군요. 문학의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문학에 정신이란 말이 붙으면 그 때 정신은 스피리트쪽 보다는 에스프리쪽이야.예술, 그 중에서도 시의 정신, 시의 혼을 왜 흔히 불어로 에스프리라고 하지 않는가. 난 이에스프리가 문학의 정신이고 정수라고 보네. 너와 나, 돌과 물의 혼을 꿰고 흐르는 에스프리가 없는 문학은 철학이나 사회과학 등에서 말하는 정신, 그러니까 스피리트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정신과 혼에 꿈이 담뿍 실린게 에스프리 아니겠는가.


-바다속에서 전복따 파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건 님오시는 날 따다주려고/ 물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 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 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논리적인 것을 싫어해 논(論)자는 쳐다보지도 않으시던 선생님께서 의외로 시론(詩論)이란 시에서 시를 남겨두어라고 했습니다. 시란 무엇입니까.
똑같은 소리 되풀이 하지말고 계속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라는 것이야. 기웃거려보니 남의 것 좋다고 흉내내지도 말고 시인의 줏대를 지키며 끝없이 떠돌라는 것이지.항 상 변하면서도 그 시인의 체통과 체취, 그 무엇에도 흔들림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자아’를 향해 항상 떠나는 시가 좋은 시 아니겠어. 아직 덜 되어서 무엇인가 더 되려고 떠도는 것이 우리의 삶 아니겠는가. 어차피 미완성이기에 그 모든 것이 서로 살맛나게 서럽고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그런 시인의 현실적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합니까. 선생님의 일제하와 5공 신군부 지지 발언을 놓고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요.
자네도 계속 그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구만. 내가 몇 번이나 답해야되겠는가. 그 때 그 일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 잘못된 일이었다고. 그때 그들에게 짓눌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협조했으나 돌이켜보니 내 짧은 생각이었다고. 기실 내 시의 혼은 정치가나 지사와는 달리 아까 말한대로 에스프리야. 나의, 인간의 덜떨어짐을 곧이곧대로 인정하면서, 의(義)나 리(理)에 굳어버리지 않고 항상 바람처럼, 물처럼 떠돌고픈 시인이었을 뿐이라고 이해해주게나.


-올들어 시를 전혀 안 쓰시고 계십니까. 올 신년시로 중앙일보에 준 2000년 첫날을 위한 시가 마지막 발표작입니까.
왜 마지막인가? 시인에게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야. 항상 현역이지. 발표는 안해도 내 가슴 속에는 항상 새로운 시가 쓰여지고 있어. 그래 심장이 이렇게 뜨겁지 않은가. 그런 시인은 죽어서까지도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거야. 독자들 가슴 속에서 매양 새롭게, 뜨겁게 쓰여지고 있을테니까.


-고향인 전북 고창에 문학관이 들어섰습니다.그곳이 어떻게 운영되길 바랍니까.
내가 살아있는데 무슨 기념문학관이야. 그것 여간 남세스러운 일 아닌가. 내 생가 가까이에 있는 폐교를 고창군에서 사서 기념관을 지은 모양인데 이제 그 분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미국에 가서 내 소장품들을 정리해 다 그곳으로 보낼 계획이네. 이런 시인도 있었구나 하며 우리 조선시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여간 좋겠구만.


-질경이풀 뜯어/ 신삼아 신고,// 시누대밭 머리에서/ 먼 산 바래고,// 서러워도 서러워도 고향에 살지라고 시 고향에 살자에서 다짐했는데 왜 미국으로 떠나려합니까.
나라고 어디 이 정든 땅을 떠나고 싶겠는가. 아내 떠나고 혼자되었으니 이제 아들 며느리 손주들 있는 미국으로 가 식구들하고 같이 사는게 순리야. 우리 큰 며느리는 이 지상에서 나와 마음이 아주 잘 통하는 사이야. 거기 노스 캐롤라이나에는 꽃들도 만발해 있고 숲도 참 좋아. 밤이면 소쩍새 부엉이도 울고 낙원이야.


미당은 이제 푸른 하늘을 날아 그 낙원으로 갈 생각이다. 30일 미국으로 떠나기로 하고 비행기편까지 잡아왔느나 갈 기력이 없어 일단 미루고 28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절대안정을 취하고 있다. 병실은 외부의 접촉을 막은채 큰 며느리가 지키고 있다. 2층 서재에는 미국에 갈 때 가져갈 시집과 몇 권의 책, 그리고 늘 펴놓고 읽던 영어성경이 보따리에 싸여있다. 물론 전용 원고지 한 뭉치도 함께 챙겼다. 서재 한 켠으론 스무살 때 부터 짚고 다니던 멋쟁이 지팡이들이 주인의 쾌유와 떠남을 재촉하며 도열해 있다. 그가 갈 낙원을 예감하고 지은 시로 썩 어울릴 것 같은 상리과원(上里果園) 한 부분을 외워본다.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경철 기자 <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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