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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인터뷰] '나를 부르지 마’ <왜 불러>의 가수 송창식

by 팬더54 2008. 11. 14.

'나를 부르지 마’ <왜 불러>의 가수 송창식  
 

 
인터뷰 365  기사전송 2008-07-14 10:34 | 최종수정 2008-07-14 10:58 
 


 
 
 
[인터뷰365 김두호] 기타를 치며 유행가를 부르는 대중 가수 중에도 ‘순수 음악예술인’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송창식은 대중가요의 순수성을 창의적으로 발산하며 평생 좋은 노래를 불러온 청아한 가요무대의 아티스트다. 대표적인 싱어 송 라이터로 발표한 100여 곡중 <왜 불러> <고래사냥> <딩동댕 지난여름> <애인> <한번쯤> <비의 나그네> <피리부는 사나이> <가나다라> <토함산> <푸르른 날> <진정 난 몰랐네> <우리는> <선운사> <가위바위보> 등이 모두 그의 창작곡들이고 히트곡들이다.
필자가 만나 본 그는 사는 방식도 순수하다. 알고 있고,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음악뿐이고 다른 데는 흥미도 없어 보이고 세상물정도 어둡다. 특히 슈퍼스타 시절에도 송창식과 인터뷰 하는 기자가 많지 않았다. 흡사 자신이 부른 <왜 불러>의 노래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가사처럼 기자들이 불러도 제 할 일만 하고, 제 갈 길만 가는 사람이 송창식이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 남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집을 짓고 가족과 평화롭게 살며 간혹 공연무대에 서 왔다. 지금의 그를 만나기 전에 1980년 여름 필자가 인기 절정의 송창식과 매우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먼저 소개한다. 더욱 그 때의 인터뷰는 찬바람이 불던 세상에 한줄기 따뜻한 바람같이 노래로 갑갑함을 달래주던 젊은 송창식의 진솔한 고백이 알알이 박혀 있다.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당신은 수시로 숨을 쉴 때만 물 위로 뜨는 고래처럼 잠수를 잘한다. 뭘 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 요즘 일과는?
사는 방식은 똑 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보다 내 시간이 좀 많아졌다는 건데 얼마 전에 MBC-TV <젊음이 있는 곳에> 출연했다.

사는 방식이란?
12시에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 점심삼아 아침을 먹고, 작품을 만들거나 공부 좀 하고 원효로 나의 스튜디오로 가서 드럼을 친다.

기상 시간이 12시라면 취침은 몇 시에 하나?
보통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서부터 새벽까지 작곡 작사할 새 노래를 구상하거나 준비를 한다. 깊은 밤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잠은 새벽 4시쯤에 잔다.

부인도 행동을 같이 하나? 새벽 4시까지 곁에서 내조를 한다든가.
그런다 해도 만류하겠다. 무리니까. 내가 잠자리에 들 무렵이 마누라의 기상시간이다. 취침 기상을 동시에 할 기회가 별로 없다.
자면 깨어나고, 깨면 잠을 자고, 그럼 부부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오후뿐이겠다.
그렇게 정확히 잠자리가 엇갈리면 어떻게 사나? 그럴 때가 많지만 깨고 자는 시간이 우리집의 규칙도 아니다.
그렇게 밤 잠 안자고 하는 음악 작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
작사나 작곡준비가 대부분이다. 그밖에 음악에 관한 지식을 찾거나 연주도 하고, 아무튼 음악 속에서 헤맨다.

지금 준비하는 노래가 있나?
작사 작곡을 끝내고 연습 중인 노래가 있다. 제목도 정하지 않앗지만 가사는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하하하 으흐흐 …’로 시작된다. (얼마후 발표한 <가나다라>였다)

내용이 재미있다. 발상 동기는?
나의 작품 소재는 만든다고 하는 것보다 줍는다는 편이 맞다. 자나 깨나, 심지어 밥을 먹다가도 떠오르는 게 노래뿐이다. 이 노래도 뭘 하다가 번쩍하고 지나가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거다.

이화여대 축제 때를 비롯해 대학가 축제에서 오랫동안 초청 순위 첫 번째 가수가 당신이다. 스스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내 노래를 들어주는 분들은 할아버지에서 어린이들까지 나이나 직업에 구분없이 다양하다. 시골마을을 지나다가 보면 마이크를 통해 내 노래가 나온다. 참 고맙고 노래하는 기쁨을 느낀다. 나는 인생을 내 생긴 그대로 가진 것 그대로 꾸미지 않고 살고 싶다. 노래 일도 그렇다. 가사에서 작곡, 목청까지 절대로 가식을 담지 않고 들어주는 분들을 위해 내안에 있는 것 전부를 바치는 심정으로 담아낸다. 과거와 같지 않지만 지금도 팬레터가 하루 20여 통이 온다.

연예인의 인기수명은 짧다. 가수는 더 심하다. 나이 탓인가?
그렇다고 본다. 노력하면 인기는 지연시킬 수 있지만 결국 인간 모두가 나이 앞에서는 방법이 없다. 인기란 것도 가수가 끄는 것이 아니고 듣는 사람들이 주는 걸로 생각한다. 오래도록 사랑을 받으려면 재능이 성숙하게 발전되어 가야하는데 어느 선에서 바닥을 드러내면 인기 수명도 끝나는 것 아닌가. 나라고 예외는 될 수 없다.

송창식은 1947년 인천에서 출생했다. 회갑 줄을 넘어 섰으니 늘 젊은 가수 같았던 그도 이제 노년기로 접어들었다.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란 이름의 포크듀오로 1968년 <나는 너>를 부르며 가요계에 나타났으나 2년 뒤부터 솔로로 활동하면서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가수 송창식이 인기의 피리를 불며 등장한 신호탄이었다. 그의 노래가 들어 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과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이 대박 영화로 떠오르기도 했다. <왜 불러> <고래사냥> 등은 운동권 대학가의 주제 음악이 되면서 한때 검열창구가 공연금지가요로 고랑을 채워두기도 했다. 송창식의 노래는 창법부터 차별성이 있다. 그 자신의 말대로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언제나 편안하게 이어지고 넘어간다. 그의 음악성도 포크 트로트 국악적인 요소들이 고루 가락의 숨결이 되고 있다. 그는 곧잘 개량 한복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서기도 한다.
언제나 머리 속에 음악으로 빼꼭한 그의 삶이 동요하지 않고 편안하게 한 가정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부인의 내조 덕분이었다. 그는 인터뷰 당시 2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었다. 송창식이 자신의 예명으로 지어 둔 송결이라는 이름을 아들에게 주었다. 그 아들도 어느 덧 28살이다.
 


서울예고 동기동창인 미모의 부인과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남남끼리 만나 부부가 되지만 그것은 하늘이 점지해준 연분이다. 난 매우 이상주의자인데 마누라는 현실적이고, 난 비사교적인데 마누라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닮고 통하는 게 있어서 사는 게 편하다.

퍼펙트 행복을 100%로 본다면 당신의 행복지수는?
마누라에 둔다면 만점이다. 그런데 내 생활 전반으로 본다면 50% 선이다.

당신은 싸움 체질이 아닌 것 같다. 부부가 다툴 때도 있는가?
드물지만 심심할 때 내가 싸움을 건다. 아무것도 아닌 걸 두고 시비를 벌이는데, 그렇게 싸움을 하고 나면 관심과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같다. 부부싸움은 부부사이의 공기를 한 번씩 바꿔주는 청량제라고 본다.

가수가 아닌 ‘인간 송창식’을 스스로 분석해 보라.
나는 답답하게 산다. 사는 요령이 없고 잘 모른다. 그래서 마누라 덕에 사는 거다. 장가가길 잘했다. 요즘은 트레이닝을 좀 받아서 개화된 편이지만 아직도 미련하다. 마누라는 초등학생 같다고 퉁을 준다. 무대에서 웃으면서 노랠 부르지만 사실 잘 웃는 체질이 아니다. 노래는 나에게 신성한 학문이고 가수활동을 한 번도 밥벌이나 놀이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서 재미없이 산다.
당신은 그러고 보니 음악도인처럼 사는 거 같다.
도인? 아니다. 여자를 알고 정열도 있는 멀쩡한 남자다. 음악하고 사생활은 다르다. 내 욕심 채우려고 누구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지만 그렇게 도덕 교과서로 살지는 않는다.

당신은 말수가 적으니 비밀도 많을 것같다. 어떤 비밀들이 있는가?
마누라도 아직 나의 성장과정이나 겪은 일을 잘 모른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생각이다.
그런 끔직한 비밀이 있는가? 묻어두지 말고 풀어놓는 게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속 아픈 기억들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와 누이동생 남매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즐거움이 없을 때 친구가 되어 주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칠 때 외로움을 달래 준 것이 음악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개가하셨다.

지금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죽마고우인 서양화가 김현주와 조각가 염동진이 있다. 내가 술을 못마시니까 어울려도 그 친구들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송창식과 인터뷰가 끝나고 당시 무역사업을 하던 부인 한성숙 씨에게 물었다. 도대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이는 한마디로 음악에 묻혀 사는 수도승이다. 내가 붙인 별명이 ‘밥줘 삼창’이다. 음악 일에 빠져 있다가 하루 세 번 그 한마디만 해서 그렇게 놀려댄다. 어느 정도 성격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했는데 결혼해 보니 정말 세상일과 담을 쌓고 산다. 결혼 뒤 이사를 세 번 다녔지만 왜 이사를 하는 지, 어디로 언제 가는 지 묻지도 않았다. 이사하는 날 그이를 임시 거처에 가 있게 하고 가구정리를 끝내고 부르면 들어서면서 첫마디가 내 공부방이 어디냐는 것부터 묻는다. 침실에 다락이 있다는 것도 몇 달 지나서 알더라. 그렇게 자신이 하는 일밖에 모르고 살지만 나는 그이가 좋다. 그것이 무능으로 안보이고 맑은 순수성으로 느껴진다. 그이를 미워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송창식에게는 ‘음악과 마누라’ 밖에 없는지 궁금해진다. 연말 콘서트를 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활동이 뜸하다. 인터뷰365는 곧 그의 최근 근황도 인터뷰로 소개할 예정이다.



송창식['87 다시 부르는 노래] - A02 왜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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