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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과 나] 흰벌, 송창식 회갑연에 가다

by 팬더54 2009. 3. 27.

이 글은 저작자인 이백천님의 허락을 받고 올린 글입니다
[펌글]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hitebee1&folder=12&list_id=7844096&page=


흰벌, 송창식 회갑연에 가다
 
"아빠, 나 별 하나만 따주면 안돼?."
강가에 섰을 때 유치원에 다니던 인혜가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별은 그냥 바라보는 거야. 사람들이 별을 다 따 가버리면 밤하늘이 캄캄해지잖아."
까페 '사파리'에 들어설 무렵, 휘모리 장단으로 사납게 몰아치던 빗줄기는  저녁을 먹고 다시 강가에 섰을 땐 비는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고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그토록 많은 별이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을 본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시켜 놓고 까페에 앉아 있는 동안 통유리 창으론 연신 빗방울이 추억처럼 흘러 내렸고  하회탈 같은 웃음을 머금고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송창식을 볼 수 있었다. 허름한 개량 한복을 입고  나타난 송창식은  통기타를 끌어 안고 그 외에도  '사랑이야' '비와 나' 그리고 사랑이야'를 별다른 멘트 없이  연이어 부르곤 무대를 내려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송창식은 그 곳에서 멀지 않은 퇴촌에 살면서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한 마리의 은어가 되어 십 수년의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방송으로만 보았던 젊은 날의 우상 송창식을 가까이에서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그가 내 테이블 곁을 지나 사라질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 가벼운 목례도 하지 못했다. 별은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존재였으므로.

신의 가장 큰 축복은 내일을 베일 속에 가려놓은 것이라 했던가.
일요일 새벽, 블로그에 접속을 했다가 확인한 똘강 선생님의 쪽지는 한순간 나를 흥분 속에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하시라도 전화를 달라는 쪽지를 읽고 선생님의 블로그를 열어보니 가수 송창식의 회갑연에 동행해 달라는 글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의 노래들이  머리 속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한데 헐크러져 웅웅거렸다. 아침 일찍 선생께 전화를 드리고 일산에서 만나 동행키로 약속을 했다.  정발산역에 내려 롯데 백화점에 들러 레코드샵을 찾았다. 송창식의 시디를 찾으니 오리지널은 없고 이장희와 함께 묶인 것 하나 밖에 없다.  굳이 구하려면 주문을 하란다. 세상이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시디를 사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똘강 선생님이 역 앞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미사리로 가는 길은 눈부신 꽃길이었다. 강변북로를 따라가면서 여의도의 환한 벚꽃 무리도 보고 온산이 황금빛으로 물든 응봉 개나리 꽃산을 지나는 동안 가슴 가득 꽃빛이 들어찼다. 록시에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이른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가까운 조정경기장 근처나 산책하면서 담소도 하면서 들꽃 사진이나 찍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선생님이 기왕에 도착했으니 왔다는 인사나 하고 나오겠다며 안으로 들어 가시더니  잠시 후 개량 한복을 입은 송창식님과 함께 나오셔서 인사를 시켜 주셨다. 반갑게 잡아주는 손이 따뜻했다.

까페 안은 생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무대 중앙엔 커다란 스크린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포크 음악의 거장 송창식님의 회갑을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라는 문구와 초서로 흘려 쓴 한시가 걸려 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조각가 염동진 부부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돌강 선생님과는 오랜 친분이 있는 듯한 염동진씨는 가수 송창식님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정갈하고도 맛난 요리가 테이블 위에 가득 차고  사람들마다 풀어놓는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까페 안은 흥겨움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똘강 선생님은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느라 연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수없이 반복하시고 나는 그 꿈꾸듯 그 풍경들을 지켜보고...

청 좋은 후배 가수 둘이 무대에 올라 송창식의 지난 히트곡들을 감칠맛 나게 불러 제꼈다. 송창식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앉은 듯 단숨에 아주 오래 전의 시간 속을 거슬러 올라가 먼지 뽀얀  숱한 지난 기억들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보냈던 탓이리라. 맨처음 고백을 들으며  가슴 설레는 고백의 순간을 가늠해 보기도 했고, 한번쯤을 부르며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길 상상하기도 했으며 친구들과 고래사냥을 부르며 여름 바닷가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의 노래는 내 젊은 날의 들숨이자 날숨이었던 것도 같다.

 아는 이라곤 똘강 선생님 밖에 없는 나는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실 때 마다 죄불안석인데 선생님은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까페 곳곳을 다니시며 카메라에 현장을 담으시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저렇게 찍은 사진들은 내일 쯤이면  블로그에 올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의 감동을 생생히 전하게 될 것이다. 록시에 오니 똘강 선생님이 얼마나 큰 어른이신지 알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마다 제일 먼저 똘강 선생님께 다가와 인사를 한 뒤에야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통기타 음악의 대부'라는 세간에 떠도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까페로 들어설 때부터 무대 중앙에 높이 걸린 한시의 내용이 궁금했었다.  워낙 무지하기도 하거니와 초서로 흘려 쓴 탓에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절반이 채 안되었다. 그 뜻이 궁금하던 차에 스님 한 분이 무대 위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송창식님의 회갑연을 위해 손수 지은 수연송이라며 그 뜻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아 시를 소개하러 나왔다며 법명이 문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를 읊는 스님의 음성이 산사의 목탁소리만큼이나 맑고도 깊었다.   

市井眞法界(시정진법계) 사람들 모여사는 곳이 참된 법계이니
世世是師家(세세시사가) 세상 모두가 선생의 집이었나니
一環大活輪(일환대활륜) 육십갑자를 한바퀴 돌아나오니
無碍太平歌(무애태평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태평가로다

시를 소개하고 게송을 하듯 스님은 멋지게 시를 읊었다. 참으로 근사하고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생일케잌에 불이 켜지고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명멸했다. 육십갑자를 일순한 포크 음악계의 별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촛불을 껐고 장내는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똘강 선생님께 전해듣기로는 오후 3시 쯤에 가까운 가수들과 함께 점심이나 먹는 자리라 하여 여유있게 간다고 조금 일찍 갔던 것이  본의 아니게 가족 친지 및 친구분들이 모이는 1부 모임부터 가수 동료. 후배들이 모이는 2부까지 몽땅 지켜보게 되었다. 오후 3시가 가까워 오면서 가수 김도향씨를 일착으로 최백호. 최성수, 하남석, 한영애, 조영남, 남궁옥분씨등이 모습을 나타내면서 까페 안은 문자 그대로 별 천지, 별 밭이 되었다.

사람마다 소위 십팔번이라 불리는 애창곡이 한 두 곡 쯤은 있게 마련이다. 나의 애창곡은 누가 뭐래도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이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음치인 내가 부르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가사가 매우 아름다워서 어쩌다 노래 부를 기회가 되면 제일 먼저 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한 곡 더 불러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비장의 카드로 꺼내는 노래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이다. 그중에도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하는 대목에 이르면 기억도 나지 않는 첫사랑 여인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곤 하는데  록시에서 우리 시대의 가객 최백호를 만난 것은 행운이란 말 외엔 달리 붙일 말이 없다.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내가 그 어렵고도 점잖은 자리에서 넉살 좋게 노트를 그에게 들이밀며 싸인을 청한 것만 보아도 그를 만난 내 기쁨이 얼마나 컸던가를 가늠할 만 했다.  잠시 후, 최백호씨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어눌한 말투로 축하인사와 함께 송창식님의 히트곡 중에 가장 음란성 짙은 노래라며 '우리는'의 가사의 일부를 소개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함께 웃자고 꺼낸 이야기였겠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우리의 가객 최백호씨는 기타를 메고 '고래사냥"을  열창했다. 역시 가수는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가수답다.
 
뒤를 이어 남궁옥분이 불려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부르던 그 맑고 고운 음색으로 '돌돌이와 석순이'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나오는 가수마다 송창식님의 히트곡만을 선곡하여 들려준다. 하긴 어느 노래를 듣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한 곡 한 곡이 모두 내 젊은 날의 영혼을 울리던 명곡 아니던가

남궁옥분은 최성수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무대를 내려갔다. 최성수는 아주 오래 전 내가 백화점에 근무할 때 이벤트 행사에 초대되어 열창의 무대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지막 한 곡까지 열과 성을 다해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똘강 선생님과 나는 까페를 빠져 나왔다. 아쉽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까페 입구에서 마주친 가수 한영애씨는 똘강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을 가벼운 포옹으로 대신했다. 똘강 선생님은 가수분들에겐 큰 어른이자 아버님 같은 존재이셨다. 수많은 가수들을 스타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신 똘강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행운아임에  분명하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 함께 앉았던 조각가 염동진 씨는 쎄시봉에서 송창식님의 노래를 듣고 선생님이 하셨다는 첫 노래 평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송창식은 '16 세기에서 20세기를 아우르는 목소리'라고 하셨단다. 염동진 선생은 똘강선생님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의 노래에 대한 평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우정이 얼마나 깊으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런 친구를 둔 송창식님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송창식님의 배웅을 받고 미사리를 떠나오면서 나는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별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인데 별밭에서 보낸 이 하루를 어떻게 갈무려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둘러 후기를 쓰면서도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은 이 앞뒤없이 적어내는 이야기가 행여 선생님께, 혹은 송창식님께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훗날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추억이 향기롭게 익으면 다시 한 번 적어보리라 다짐하며 이만 후기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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