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가객 송창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Discography/송창식개별

거성곡 보현행원송

by 팬더54 2010. 11. 24.

거성곡 보현행원송-01.서곡
거성곡 보현행원송-02.개경계
거성곡 보현행원송-03.개법장진원
거성곡 보현행원송-04.시
거성곡 보현행원송-05.예경제불원
거성곡 보현행원송-06.칭찬여래원
거성곡 보현행원송-07.광수공양원
거성곡 보현행원송-08.참회업장원
거성곡 보현행원송-09.수희공덕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0.청청법률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1.청불주세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2.상수불학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3.항순중생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4.보개회향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5.열가지 행원
거성곡 보현행원송-16.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듣는방법]
1.전체듣기 하실려면 먼저 동영상을 정지한 후에
  오디오 플레이 버튼만 한번 누르시면 계속해서 자동 플레이 됩니다.
2.선택 한곡씩 들으시려면 오디오 오른쪽 list 화살표를 누르시면 쭉 아래로 곡명이 나옵니다.
  선택 플레이 하십시오.
3..동영상을 보시려면 오디오 정지후 감상하세요.



 
1992년 4월 2일 중앙국악관현악단 창작국악 교성곡 [보현행원] 공연 1시간 20분 전체실황
 
 

 

 

1992년 4월 2일 중앙국악관현악단 창작국악 교성곡 - 보현행원송 -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작시: 광덕     
작곡,지휘: 박범훈           
연출: 손진책                     
안무: 국수호         
합창: 불광합창단      
연주: 중앙국악관현악단           
무용: 중앙디딤무용단                                                                         
특별출연: 송창식, 김성녀, 두레패 사물놀이, 중앙대 한국음악과, 인노, 혜인, 지암, 송암

 
 
[당시 공연장면]


 

 CD 에 담아있는 설명서입니다] 

















[창식사랑투 카페에 올린 보현행원송에 관한 론도님의 글을 올립니다]
송창식.. 아름다운 추억이여 9

 

1992년 봄 가수 송창식의 또 다른 면모를 보이는 공연을 보게 됩니다.

잠실에 있는 불광사란 절과 불교서적을 출판하는 불광출판사는

불교경전을 창작곡으로 만들어 공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광덕스님이 시를 쓰시고 중앙대학교 박범훈교수가 곡을 붙인 ‘보현행원송’

마당놀이 연출가 손진책씨의 연출로

불교합창단, 사물놀이패, 타악기 연주자, 무용단, 중창단과 함께

남녀 쏠리스트로 송창식씨와 김성녀씨가 중앙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공연을 하게 됩니다.

 

80년대는 우리가락, 우리 것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점차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국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소규모 악단을 비롯해서 국악관현악단의 창단도 이루어지던 시기입니다.

70년대 후반쯤인가부터 시작된 MBC마당놀이 공연이 한창 주가를 올리는 때이기도 했고,

슬기둥이란 소규모 국악전문 연주단체들이 창단되어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하죠.

중앙대 국악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한 중앙국악관현악단 역시도 그 이삼년 전 창단을 합니다.

 

국악가요는 물론 피리산조, 가야금산조, 해금산조, 등등의 개별악기용 창작곡들과

국악관현악단연주용 창작음악 등 정말 다채로운 국악음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또한 정통국악을 연주하시던 분들의 공연 역시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박동진명창과 조상현명창을 비롯 김소희명창, 오정숙명창 등등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평생 업으로 삼아 오신 일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하죠.

 

이런 시기에 불교경전을 바탕으로 한 이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오후 4시와 7시 두 번에 걸쳐 공연은 이루어지는데,

티켓은 월간지 ‘불광’ 정기 독자들과 불광사 신도들에게 무료로 배포가 되죠.

그러나 반응이 시큰둥했던 신도들의 표를 모친은 대거 수거해 제손에 쥐어주십니다.

그렇게 4시와 7시 공연의 티켓 13장은 제손으로 들어옵니다.

 

언제나 몰려다니며 공연을 보는 친구들과 선배는 물론 관심있어 하는 이들과 공연을 보러갑니다.

평일이라 4시표가 남는 것이 아까워 월차를 내자 당시 학교 선배인 회사 팀장은

시말서를 쓰라며 농을 하고 그 농에 사표를 쓰겠다고 응수를 하자,

제 대꾸에 호기심이 생긴 부장은 7시 티켓 2장으로 월차를 용인합니다.

 

공연은 합창단의 합창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중간중간에 쏠로들의 노래와

사물놀이공연, 타악기연주, 무용단의 무용에 승무 독무, 그리고 중창단의 노래가 사이사이 끼워지면서

마지막 20분은 합창단과 중창단 그리고 쏠로들이 합께 공연을 하는 것으로 90분 동안 하는 공연입니다.

 

70분의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쏠로들은 전반에 4~5분 정도만 공연을 하곤 자리를 지키고,

그리곤 후반 20분전까지 각종 공연들이 이어집니다.

합창과 중창, 사물놀이공연, 타악기연주, 무용 등등..

 

그리고 후반부 드디어 남녀 쏠로가 번갈아 가면서 5분쯤 노래를 하고

그리곤 합창단, 중창단과 함께 쏠로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15분을 공연하는데 음악은 서서히 저음에서 고음으로 음역을 올려가며 진행이 되어갑니다.

 

고음으로 갈수록 송샘의 소리가 도드라지면서 여성 쏠로인 김성녀씨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녀는 고음이 어렵자 화음을 넣는 것처럼 한옥타브를 낮춰서 부르는데

그만큼 그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고음으로 연주는 진행이 됩니다.

 

특히나 마지막 약 5분 정도의 클라이막스에서 합창단과 중창단의 소리를 리드해가는

남자쏠로의 파워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립니다.

 

신도들에게 무료로 배부가 된 티켓이라 사실 대부분 관객들은 음악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여성 신도들이 많았고.. 또 연세들이 지극한 분들이 적잖았는데 그분들은

평소 TV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한번쯤’과 ‘피리부는 사나이’만 부르던

송샘의 또다른 면모에 그만 할말을 잃고 맙니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싱글거리며 노래를 하는 가수 송창식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4시 공연을 이미 결혼을 해 살림을 하는 친구들과 보고 세종문화회관을 빠져 나오는데

한꺼번에 출구로 몰린 관객들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모두 똑같은 소리를 합니다.

 

"송창식이 노래를 저렇게 잘했어. 완전히 딴사람 같다."

 

넉넉한 티켓에 이른 저녁을 먹고 퇴근해오는 친구들과 다시 7시공연을 보러갑니다.

낮공연과 달리 퇴근한 남성신도들이 많았던 저녁공연.

그제야 잠이 깬 것인지 이양반 파워는 낮보다 훨씬 깊어지고 강하더군요.

그래서인지 합창단과 김성녀씨의 파워는 오히려 더 반감된 듯이 들릴 정도였죠.

 

남성신도들의 반응도 낮의 여성신도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인과 함께 그날 공연을 본 회사의 팀장부부는 그만 그날 송샘에게 시쳇말로 꽂혀버립니다.

그날 귀가길에 레코드가게에 들러 그의 앨범을 싹쓸이로 사들이기도 했답니다.

 

일주일 뒤 KBS FM 국악방송에선 그날 공연을 녹음으로 방송했고,

모친이 녹음해 주신 그 방송을 아마 족히 수백번은 더 들은 듯 싶습니다.

사실 80년대 송샘이 홥발히 참여했던 각종 국악관련공연을

제가 거의 빠짐없이 볼 수 있던 이유는 모친의 도움 덕분입니다.

 

대부분의 공연들은 KBS FM방송을 통해서 일부 티켓이 청취자들에게 배포가 되었는데

당시는 엽서나 편지를 통해서 티켓을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한정된 티켓이 배부가 되었는데

저는 학교나 직장을 다니느라 방송을 듣지 못하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모친은 늘 FM방송을 청취하시다 공연 소식을 들으시면 바로 티켓을 신청하시곤 했었습니다.

당시 FM방송의 DJ들은 언제나

"딸을 위해 티켓을 신청한다"는 모친의 사연에 꽤는 감동을 받곤 했었죠.

 

 공연을 본 뒤엔 모친께 그날 본 공연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했었고,

그러면 모친은 언제나 담당자들에게 편지로 그 감상을 적어 보내시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셨었죠.

 

제 나이 이십대 후반에 이미 환갑이셨던 노인이 매번 딸을 위해 티켓신청을 하시고,

그 공연에 대한 감상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보내시는 덕분에 방송관계자들은

나중엔 추첨과 상관없이 티켓을 보내주었고,

따라서 송샘의 출연여부와 상관없이 KBS가 후원하는 공연들은 거의 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모친의 이런 성원덕분이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언제나 이양반 공연에 필수로 따라오는 소소한 전율은 있었지만,

 삼년전 공연때처럼 자극적인 전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을 보면서 "과연 가창력이란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흔히 우리는 발성이 크고 좋거나 음역이 넓으면 가창력이 좋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창력이 좋다는 사람들이 모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않죠.

단지 발성이 좋다는 것을 가창력으로 친다면 조영남씨도 그 가창력에선 빠지지 않습니다.

또 그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조용필씨의 가창력 역시 만만치는 않죠.

 

그럼에도 두사람의 공연에선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송샘의 공연에서 번번히 느끼면서 가창력이란 것에 대한 생각을 늘상하게 되곤 했었죠.

친구는 "네가 그양반에게 꽂혀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날 처음으로 그 공연을 본

회사 선배이기도 한 직장 상사부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설명이 안되는 것이죠.

또 같이 공연을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

"정말 송창식 맞아!!!!" 라는 반응에 대한 설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다시금 확신한 것은 결국 가수의 가창력이란 것은,

단지 발성이 좋다거나 음역이 넓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수 스스로 그 곡에 대한 해석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전달자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는 확인이었습니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으나,

그러나 감동을 주는 가수는 많지 않습니다.

단지 노래를 잘하는 가수와 감동을 주는 가수의 사이엔 바로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분의 공연을 볼때마다 느끼고 확인하게 되는 점입니다.

 

 

PS : 그 당시 국악관련 공연이나 그와 비슷한 상당수 공연은 KBS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공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KBS는 자신들이 후원한 공연은 일주일 후 방송에서 녹음방송으로 방송을 하곤 했었죠.

 

모친은 공연장 티켓은 저를 주시고 당신은 그 공연실황 방송을 녹음을 하면서 들으시곤 했기에

사실 당시 송샘이 공연한 공연 대부분은 녹음으로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칠년전까지는....

 

칠년전 이사준비를 할 때 친구가 남동생이 막 이삿짐센터 사업을 시작했노라고 도와달라는 말에,

경력이 미천한 회사에 이삿짐 부탁을 했다가 이삿짐 일부를 분실했었는데

그때 분실한 분실물 속에 공연관련 자료들이 포함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짐속에는 당시 공연녹음 뿐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던 송샘에 대한 적잖은 자료까지 몽땅....

 

이삿짐이란 것이 짐을 풀어 정리하기 전까지는 짐이 없어져도 없어진 줄을 모르기 마련,

나중에 알고 뒤늦게 찾아보려 소동을 벌였지만 이미 버스 지나간 뒤였죠.

위에 테잎이 달랑 하나 남은 것은 오디오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녹은 테잎들은 송샘의 공연 뿐만 아니라 80년대 공연과 관련 한 녹음들을

모친이 정성스럽게 녹음해주신 어머니의 유품이나 마찬가진데..

 

팬더님이 송샘 자료를 모으시는 것을 보면서

새삼 그 잃어버린 짐들에 대한 생각이 간절한 요즘입니다.

가지고 있었다면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