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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음악과나

강릉, 경포대 그리고 송창식 [우광호]

by 팬더54 2008. 11. 12.

우광호님께서 창식사랑홈페이지에 쓰신(2005-05-30 오후 10:56:37) 글로  창식사랑 홈피에서 옮겨 왔습니다


지난 주말 직원들 여럿과 함께 강릉엘 다녀왔다.


29년 전 대학 1학년 때 무전여행 도중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며 레너드코헨의 'So Long Marianne'를 들었던 'Number nine'이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던 강릉,
19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의 신혼여행 첫 숙박지였던 강릉,
몇 해 전 승진에 또 미끄러지고, 죽고 싶도록 속상해 무작정 아내와 막내를 태우고 다녀왔던 정동진,
그때 말고도 업무적으로 한두 번 다녀왔던 적이 있던 강릉.
이제는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는 강릉...


그 강릉의 경포대, 베란다에 나서면 발아래 파도가 밀려오는 '에머럴드'라는 호텔에서 3일을 묵었다.
첫날 저녁을 먹었던 윌(Will)이란 식당은 2층에는 같은 이름의 독립된 까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선 내 시선이 식당 한켠 벽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5백장은 족히 넘을 앨범(전축 판)이 빼곡히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70년대 다방의 디제이 실을 보는 듯 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속칭 '엘피파'는 아니다.
15년 전, 당시 입문은 진공관으로 했지만 여러 가지 관리상의 어려움 등으로 지금은 트랜지스터와 진공관을 함께 사용하는 중이며, 판도 CD를 주축으로 소위 명반이라는 목록을 들고 한 장 한 장 모아 한 3-4백장 정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틈틈이 곁가지로 모은 엘피도 1백장 가까이는 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송창식님의 판들 20여장을 포함하여.




그러나 판들을 보는 순간 욕심이 들었다.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 판들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몇 장을 고르면 파실 수 있으세요?"
"음악 좋아하시나 보죠? 파는 것은 안 되고요, 한 장 정도는 기념으로 선물할 테니 골라보세요."


아마 내가 인솔한 30명에 이르는 손님의 매상을 재빠르게 감안한 상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순수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40대 후반 가량인 이 남자의 선한 인상과 넉넉한 웃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고, 이게 웬 횡재람." 하여튼 나는 그 판들이 빼곡히 쟁여진 벽에 바짝 붙어 하나하나 훑어가기 시작했다.
좋은 판들은 쉽게 눈에 뜨이지 않았다.
도둑놈 심보처럼 한 장에 1백여만 원이 넘는다는 후르트뱅글러의 명반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소위 원판이나 한 장 건질 수 있을까, 세세히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2십여 분, 눈이 아프도록 찾았지만 마음에 드는 판이 없어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송창식님 판은 없나요?"
"아마 있을 겁니다. 잘 찾아보세요. 이층 까페에는 훨씬 더 많이 있는데 거기는 안 되고요."


아하, 그랬구나. 좋은 판들은 이층에서 현역으로 뛰는 중이고 이 곳에는 퇴역병들만 옮겨 놓았구나.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냥 선물한다는데, 하는 마음에 계속 작업을 하였다.
막 지쳐가는 순간에 한 장이 눈에 번쩍 띄었다.
1984년에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세 분이 공동으로 취입한 '하나의 결이 되어'라는 판이었다.
이 앨범도 분명한 명반이다. 더구나 현재 내가 가지지 않은 판이며 게다가 두장짜리 아니냐.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이걸로 하자.


 

하나의 결이 되어 1집 1984년 1월(1984년 3월)
 

"사장님, 이걸로 할게요."
"아, 골랐어요? 그러세요."

 


그날 저녁은 유난히 맛이 있었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또 그 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성큼성큼 벽으로 다가가 들국화 라이브 판을 골랐다.
평소 전인권을 좋은 가수라 생각해왔고, 이 판도 두장짜리이다.
'행진'
이 얼마나 좋은 노래더냐.


"이겁니다?"
"아, 예. 그렇게 하세요."


이번에도 아저씨는 마음 좋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오늘 밤, 글을 적기위해 컴퓨터 앞에 앉기 전 진공관 '오로라'에 'Thiel' 스피커를 물린 내 간이 씨스템에 그 '하나의 결이 되어'를 걸었다.
본 씨스템으로는 콘라드존슨 프리미어14에 다인오디오 콘투어3.3을 쓰는데 본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첫 곡부터 판이 튀는 것이 아닌가.
세 곡 째를 듣다가 판을 내리고 전인권의 판을 걸었다.
이 판은 다행히 곡이 매끄럽게 울린다.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송창식님의 그 좋은 판이 아래층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에 다시 그 곳을 들릴 기회가 있다면 말해야겠다.


"사장님, 오늘은 이층에서 한 장을 고르겠습니다. 안된다고 하지 마세요."
"?"


그는 그 때 뭐라고 말할까, 벌써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 내년 봄의 결혼 20주년에 대비하여 조금씩 여행경비를 모으고 있다.
일시에 거금을 들여 여행을 가자고 하면 아내가 사양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외라면 제일 좋겠고, 제주도라도 좋고, 아니면 이 곳 강릉 경포대에 들러 다정하게 백사장도 걷다가 이번에는 이층 까페에 올라 음악을 듣는다 해도 어찌 아니 즐겁겠는가?

나는 지금 송창식 팬클럽 싸이트(www.songcs.com)에서 님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
님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깊고 또 깊어, 그 끝을 모르겠다.


(2005.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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