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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기사

[기사] 1996년-송창식

by 팬더54 2008. 11. 8.


 

96년은 유난히 활동을 쉬고있던 가수들의 컴백이 많은 한해였다. 대부분 40대를 맞은 이들 중견가수들을 다시 무대 위로, 관객의 시선 속으로 되돌아오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도 사회 전반적인 불경기의 여파로 인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40대 인생의 중견을 맞은 사람들이 위기를 맞고있는 시기와 걸맞지 않게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듯한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의 대중가요 판도가 지나치게 10대의 감성 위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한순간 나타났다 불꽃처럼 반짝하고는 곧바로 사라지는 가수의 노래에서 신뢰감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힘든 일이고 그러다보니 삶의 연륜이 짙게 녹아있는 모래와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자연스레 찾게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폭넓은 지지대를 확보하며 한물간 가수에서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고있는 인순이를 필두로 나미와 방미, 최헌, 조덕배, 이은하, 조영남등이 새 음반을 발표하고 맹렬히 활동중이거나 활동을 준비 중에 있다. 인생의 황금기라는 40대의 연령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한 이들의 활동은 대중가요의 폭을 넓히고 저변확대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대열에 합류했으면 하고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는 가수가 바로 송창식일 것이다. <참새의 하루>를 발표한 이후 송창식은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직도 현역가수들 못지않은 관심과 지지를 얻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앨범이 나오리란 소식은 들리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있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던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인 송창식. 그의 어떤 점이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는 가수로 남게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의 노래 속에 담긴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혼,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진 노랫말, 그것을 데중에게 호소력있게 전달하는 뛰어난 가창력 때문일 것이다. 그가 윤형주와 결성했던 듀엣<트윈 폴리오>는 첫 앨범에 담긴 노래들이 대부분 팝과 칸소네의 번안곡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화음으로 인하여 한국의 <사이먼과 가펑클>로 불리웠다.


하지만 송창식이 정작 자신만의 개성을 획득한 것은 트윈 폴리오를 해체하고 난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해체 이후 송창식은 70년대의 젊은 정서를 대변하던 작가였던 소설가 최인호의 빼어난 노랫말을 가사로 차용해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길 수 있었다, <고래사냥><꽃, 새, 눈물><가위 바위 보><걷지말고 뛰어라>등등. 70년대 송창식 음악의 배후에는 최인호라는 작가의 대중문화에 대한 빼어난 통찰력이 뒤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송창식은 자신의 노랫말로 곡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피리부는 사나이><토함산><우리는><사랑이야>등과 국악과 가요의 결합을 시도한 <가나다라>등 꾸준히 애창되는 아름다운 노래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송창식 특유의 음악세계가 이 시기부터 비로소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송창식의 음악세계는 동시대 젊은이들으 상실감과 방방을 달래주던데서 나아가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어루만지는 공감대까지 확장된 것이다. 판소리와 타령에서의 깊은 호흡을 가진 그의 목소리는 기쁨과 슬픔의 표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비애와 한의 정조는 역설적인 깊이와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언제쯤 송창식은 침묵을 깨고 대중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도 너무 충분한, 바람부는 벌판에서 외롭지 않은" 노래를 소외와 상실감에 짓눌리는 90년대의 대중에게 다시 불러줄 수 있을 것인가. 97년 새해에는 송창식의 새로운 노래, 새로운 활동을 다시 만날 수 있게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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