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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객 송창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평론&기사

[평론:손종국] 마음으로 만난 사람

by 팬더54 2008. 11. 7.

[속 별들의 고향 OST1978]10.청포도를아시나요-송창식


한 번 태어난 인생 이 사람처럼 살아 볼만하지, 얼쑤쿠나 하며 장단을 던지는 폼이 어디 굿판이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물패가 몰려든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온통 무대로 몰아들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순식간, 온통 분위기는 통기타 살풀이 신명에 정신을 못 차리고 관객들은 얼싸둥게가 절로 나오고야만다.

기타 하나 둘러메고 삐딱하게 건들거리는 모습이 얼핏보면 백수건달인 냥 싶기도 하고, 푸짐한 웃음 한 번 받고 나면 그것도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지금은 어디에 자리를 틀었는지 참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판이다.

칠, 팔십 년대, 대학가건 어디건 이 사람 노래 한 곡조 못 외우고 다니면 취급 못 받던 때도 있었다. 당시 동네 코흘리개들도 '왜불러'나 '고래사냥' 정도는 입에 꿰고 다녔던 시절이었으니, 여기서 누구라 들먹인들 헛수고이리라.


밤 길, 어렴풋한 미사리의 물살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느새 코앞에 '록시'라는 라이브카페가 놓여져 있었다. ‘송창식이 노래부르는 곳', 아직 공연이 시작하기 이른 시간이었는지 분위기는 한산하기만 했다. 한 동안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이 이내 그가 당도하고 있었다.

30년이 넘게 무대생활을 해온 성격이라 격식을 갖추는 것이 어색한지 앉자마자 먼저 말문을 트며 오히려 취재진을 당황하게 한다. 오랜만에 듣는 걸출한 웃음. 역시 그다웠다. 옛날 트랜지스터에서 흘러나오던 젊은 송창식의 그 소리.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소리를 듣기에도 어색하지 않게, 젊지만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그 사람. 하지만 지금껏 해왔던 노래만큼은 더 불러도 될 것 같다고 먼저 심정을 털어놓는 자신감이 그러한 생각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듯 포석을 던져 놓는다.

그는 여전히 70년 당시의 무교동거리를 그리워했다. 대중가수로서 자신에게 지침이 되었던 선배 조영남을, 트윈 폴리오 시절의 윤형주를, 그리고 음악감상실 쎄시봉 또한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무교동의 쎄시봉이 없었다면 가수 송창식도 있을 수가 없지요" 하며 너털스레 웃는 모습이 그 때 쎄시봉과 함께 했던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거리의 젊은 노숙자였던 그가 처음 가수를 시작하게 된 일화는 이러하다. 당시 쎄시봉은 각 대학의 명물들을 무대로 초대하는 행사로 유명했던 시절이었다.


서울예고를 다니다 어려운 살림으로 인해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송창식이 홍대앞을 어슬렁거리며 그저 밥 한끼 해결하면 그나마 하루가 성공적이었던 때. 학생도 아닌 신분에 도강을 하고 우연히 홍대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한 곡조 불러제끼다 그만 쎄시봉 사장의 아들에게 발탁이 된 것이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는 쎄시봉에서 무대에 서게 됐고 그 시절 포크계를 주름잡던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조영남 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졸지에 무교동의 유명가수가 된 송창식. 어렸을 적 음악신동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자신이 가수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었다. 지금은 유명 엠씨가 되어있는 이상벽씨가 사회를 보던 그 자리에 검은 색 군화와 헐렁한 옷차림으로 처음 무대에 섰던 그 시간을 그는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교동거리의 낙지 집과 실 비집을. 일년 내내 변함이 없던 수영복 바지를 잊지 않았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서울을 떠나온 이유인 즉은, 단 하나 집 값이 싸다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엔 통상적으로 공기가 어떻고, 사람이 어떻고를 생각했지만 또 한 번 헛짚었다는 생각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솔직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 또한 누구보다 자신만만하고 누구보다 열린 생각. 고등학교를 다니던 첫째 놈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얼싸하며 반겼다는데, 그 속이 여러모로 궁금하기만 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운명적으로 서울예고를 오게 됐다'는 부인을 가정부로 만들지 않고 비즈니스우먼으로 받드는 사람. 그래서 딸 하나도 그저 여자가 아닌, 하나의 창조자, 연극쟁이로 만들고 싶다고 은근히 바라는 사람. 그가 바로 송창식이다.

<손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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