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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객 송창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Discography/트윈폴리오정규

[트윈폴리오] 트윈 폴리오 걸작, 트윈폴리오 리사이틀 (1970 지구)

by 팬더54 2008. 11. 18.

트윈 폴리오 걸작(1970.1.5 지구 JCS-0372,8805115500030)
그 뒤 발매앨범은 트윈폴리오 리사이틀
 LP 1973.09.20 Jigu (JLS-120372) 
 LP 1976.03.21 Jigu (JLS-120372) 
 LP 1980.03.21 Jigu (JLS-120372) 
 CD 1988.08.30 Jigu (JCDS-0031,8805115000301)



Tracks 


 Disc 1
  1. 축제의 노래 (작사:지명길 외국곡) 
  2. 행복한 아침 EARLY IN THE MORNING
      (작사:지명길 외국곡)  
  3. 에델바이스 EDEL WEISS (작사:지명길 외국곡)  
  4. 낙엽 LET IT BE ME (작사:홍현걸 외국곡)  
  5. 슬픈운명 ACE OF SORROW (작사:홍현걸 외국곡)  
  6. 회상의 노래 BOTTLE HYMN OF THE REPUBLIC
      (작사:지명길 외국곡)  
  7. 고별 MASSACHUSETTS (작사:지명길 외국곡)  
  8. 웨딩케익 Weding Cake (작사:홍현걸 외국곡)  
  9. 하얀 손수건 (작사:조영호 외국곡)  
 10. 더욱 더 사랑합니다 THE MORE I LOVE YOU
       (작사:지명길 외국곡)  
 11. 사랑의 기쁨 PIACER D'AMOR (작사:지명길 외국곡)  
 12. 내사랑 어디로 SOME WHERE MY LOVE (작사:지명길 외국곡) 


 트윈폴리오 리사이틀  LP 1976.03.21 Jigu (JLS-120372)  

 


 
트윈폴리오['70 걸작 '76 리사이틀]전곡 연속듣기
 






튄 폴리오 리사이틀 LP 1980.03.21 Jigu (JLS-120372)



CD 1988.08.30 Jigu (JCDS-0031,8805115000301) 표지사진





[1]
자켓에 보여지는 것처럼 그들은 참 즐겁고 싱그럽게 노래들을 불렀었다..
기타 하나면 모든게 행복해지는 그들....
그들의 기타와 목소리에서 3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그들을 다시 재현한다.

 트윈폴리오는 송창식님과 윤형주씨로 67년에 결성되어 69년 12월에 고별무대를 갖게 된다..
 수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그들은 70년 고별무대를 마치고  발매한 앨범으로 73,76년 80년에 세차례 재발매가 되었다.
 70 년 11월에 나온 초판은 한정적으로 발매 하여 희귀판이 된 지금 위에 올려진 곡들과 자켓은 76년에  재발매 된것이다..


[2]
송창식에 대해 얘길할려면 twin folio를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Twin Folio는 아마츄어 음악인들이 모여 노래하던 세시봉이라는 음악감상실에서 윤형주와 함께 결성한 듀엣이다.

1968년에 만들어져 다음해 1969년에 해체되고 그후 각자 솔로의 길을 걷게되는데 둘다 singer/songwriter로써의 실력을 갖추며 한국 포크음악에 주도적 역활을 하게된다. 이음반은 76년에 제작되었지만 녹음은 훨씬 전에 그들이 한창 활동할 때 이루어졌다. 전곡이 외국번안곡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만들어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이때는 송창식이 한껏 절제된 소리를 만들어 불렀기에 윤형주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므로 화음이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물론 이들의 진짜음악은 팀이 깨지고 제각기의 개성대로 다른 음악들을 발표함으로 이루어지지만 70년대 한국 땅에 통기타 문화와 포크음악의 시작을 알린 장본인인 셈이다.


어떤 평론가가 한국대중음악은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한 기사를 읽은기억이 나는데 내생각은 이렇다. 한국대중음악은 twin folio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고 말하고 싶다. 비록 짦은기간 활동했고 대중성도 없었지만 가요무대와 젊음의 행진, 흘러간 노래와 근대판 노래 그사이에 이들이 서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과 그들의 동시대인들 김민기, 한대수, 이장희, 김정호등이 singer/songwriter의 길을 터놓으므로 80년대와 90년대에 많은 실력있는 singer/songwriter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의 영향을 싫든 좋든 간에 안 받을 수 가 없었을 것이다.


[3] 트윈 폴리오의 태동 움직임[팝&가요 칼럼니스트 선성원 ] 
 
한국 포크의 시조가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한대수의 음반이 1973년에 나온 데 반해 트윈 폴리오의 음반은 1968년에 나왔기 때문이다(한대수가 귀국 공연을 가진 게 1969년임). 그러나 엄밀하게 트윈 폴리오의 노래는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등 포크 음악이 아닌 팝송을 번안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송창식과 윤형주는 1세대임은 분명하지만 처음에는 포크가 아닌 장르로 출발한 건 분명하다.

트윈 폴리오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후 각자 솔로로 나섰다. 송창식은 솔로 독립 후 비로소 포크인으로 자태를 나타냈다. <비의 나그네>, <창 밖에는 비오고>, <꽃보다 귀한 여인>, <내나라 내 겨레> 등 분명한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포크 가수로는 최초로 10대 가수에 오를 정도로 포크를 대중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그런가하면 윤형주는 <바보>, <미운사람> 등 송창식 보다는 여린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음악적 색깔이 너무 판이하다.

트윈 폴리오의 시작은 듀엣이 아닌 트리오로서 송창식, 윤형주 외에 이익근이 있었다. 하지만 이익근의 군복무로 자연스레 듀엣이 됐고 트윈 폴리오의 데뷔 앨범에도 송창식, 윤형주만 참가했다.

이 앨범은 트윈 폴리오의 보컬 앙상블이 기가 막히다. 하지만 포크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포크의 첫 음반이다. 아니다라는 엇갈린 주장이 나오는 건 이 음반의 수록곡이 <하얀 손수건>, <웨딩 케익> 등 그 즈음 인기 있던 팝 넘버로 채워졌기 때문으로 그런 면에서 볼 때 포크의 원조(?)로 보기는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부인 못 할 일이다(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편곡에서 팝 냄새를 확 바꿔 포크적인 색깔로 했으면 하는 게 유감이다).

아무튼 트윈 폴리오는 단 1장의 음반(나중에 쌍용그룹에서 지원해 줘 또 1장의 음반이 나온게 있음)만 남기고 해산하는데 당시 의과대생이던 윤형주가 학업을 위해 탈퇴한 게 이유였지만 그는 곧 음악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때가 늦어 송창식이 솔로로 나선 이 후였다.

팝 & 가요 칼럼니스트 선성원 


[4]

초반은 비매품으로 1970년 1월에 한정 발매된 희귀 음반이며, 

이후 76년과 80년, 두 번에 걸쳐 재반 발매가 이루어졌다. 라디오와 리사이틀 등을 통해 그야말로 막가파식

인기몰이를 하던 1969년 12월, 여성팬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를 날린다.

.해체...해체 발표 후 12월 21-22일 이틀간 열렸던  드라마센터에서의 고별공연은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여성팬들로 난리법석이었고, 결국은 눈물 바다로 변했다고 하며,

공식 해체 발표 뒤에도 팬들의 엄청난 요청에 의거 해체 공연이 몇 차례 더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한 장의 판에 그들의 모든 게 녹아있다.

어느 한 곡 아름다운 하모니가 모자라거나 더하지도 않은 트윈 폴리오이다.

그들의 자작곡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결코 이 음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순 없다.

 

68년12월, 드라마센터에서 첫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친 트윈폴리오 는 여중고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고..

이 들은 경기여고 특활반의 초청을 받고 당시 2학년생 양희은의 노래 반주도 해주었을 만큼 소탈했었습니다.

그러나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트윈 폴리오의 느닷없는 해체 발표에 팬들은 경악했었죠..

집안의 반대 속에 활동하던 윤형주가 학업을 위해 경희대 의대 본과로 학교를 옮기는

사태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해체가 된다기에 더 그랬구여...

첫 리사이틀 장소였던 드라마센터에서 69년 12월21~22일 양 일간 개최했던 공식 고별 공연은

당시 이 들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합니다.

 

공연은 이례적으로 찬조출연 없이 둘만이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데뷔곡 하얀 손수건을 부를 땐 수많은 10대 소녀팬들이 울먹이며 따라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었습니다. 

윤형주의 '이제 우리 트윈 폴리오는 그만 해체하려 합니다'라는 짧은 고별사에 이어 송창식이 신중현 곡 '떠나야 할 그 사람'을

부르던 중 두 멤버가 부둥켜 안고 통곡, 장내는 순간 울음바다가 됐었습니다.

 

부산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70년 1월15일부터 4일간 열렸던 해운대관광호텔 공연은

무려 6번째 비공식 고별 공연. 팬들은 이들의 해체를 도통 인정하려 들지않았고...

MBC, TBC 등 방송들도 이례적으로 5차례나 고별 공연을 재편집 방송하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yong9471/110017981917
트윈 폴리오1970 ,,, 축제의 노래 / 행복한 아침 / 웨딩케잌 / 더욱 더 사랑해/ 낙 엽 (73년) |작성자 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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